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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살림과 삶_참기름 한 방울의 위로(브런치북수록용

by 퇴B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먹구름으로 짙다.

별이 가려 세상도 우중충하고,

기분마저 눅눅하다.


빨래는 마를까, 밥은 해야 하나.

할 일은 많은데 몸은 천근만근이다.


재너머 사래 긴 밭을 매는 기분.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긴 오는 걸까 싶은,

앞날마저 흐려 보이는 날.


“그런 날.”


―――


한창 장마철에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걱정했는데,

막상 비행기가 대류권 위로 올라가자 비는 멎었다.


중학교 때 배웠다.

비행기는 기상 현상이 일어나는 대류권 위를 난다고.


배워서 알고 있어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있다.


아래서 보면 캄캄한 먹구름도,

위에서 보면 새하얗다.


인생의 역경도, 슬픔도

그 자리에서 보면 막막하지만

조금만 자리를 틀면 또 다르게 보인다.



“조금만.”



―――


숟가락조차 들 힘이 없을 때가 있다.

곁에 누운 고양이마저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가만히 누운 채로 다정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말할 기력도 없을 것 같았는데

상대의 “여보세요.”를 듣는 순간,

답할 힘이 생긴다.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좀이 쑤셔 돌아눕게 되고,

별 얘기도 아닌 말을 투박하게 나누다 보면

목도 마르다.


목마른 사슴처럼, 물을 찾아 몸을 일으킨다.

희한하게 물 한 잔 마시면

숟가락 들 힘이 생겨 있다.



“야, 사실 나 밥 먹을 힘이 없어서 전화했어.”

“잘했다. 그럼 이제 밥 먹자. 뭐 먹을 거야?”

“몰라, 고추장밖에 없어.”

“좋지. 그래도 참기름 한 방울은 넣자.”


그래, 참기름 한 방울은 넣자.


고추장 한 숟갈만 덜렁 떠서 밥 위에 얹었다가도

다정한 이가 시키면

참기름병뚜껑쯤은 따게 된다.


그러다 보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뜨신 밥이 일단 들어가면

설거지 정도는 할 수 있고,

설거지 한 김에

내일 먹을 쌀도 불려 놓는다.




“한 방울만.”




사람 인(人) 자는

서로 기대어 선 모습이라 했다.


사랑 애(愛) 자는

손(手)으로 마음(心)을 감싸는 모양이다.


형편없는 이런 내 마음을 가만히 감싸줄 손,

그 손은 내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손을 잡으면

넌 별이 되고,

난 어느새 그 별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게 된다.


먹구름밖에 안 보이던 하늘에

‘너’라는 별 하나 뜨면,

우린 서로의 인력으로

당기고 밀며 움직인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너에게 전화를 걸고,

한 방울의 참기름만 있다면

내일도 사람처럼 살 애정을 얻는다.



“딱 하루치.”


__



전화해.

태풍 속에서 널 건져줄 순 없어도

그 태풍의 언덕에서

별을 보게 해 줄 순 있다.


내가 전능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널 움직이게 할 테니까.




“곧 죽을 것 같아도,

별을 보면 딱 하루는 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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