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것들은 골칫덩이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말은 진리다. 나는 오늘도 일상에서 그 증거를 마주쳤다.
완전히 까만 옷과 완전히 흰 옷을 빨래하는 일은 유난히 번거롭다. 흰 옷은 다른 색이 물들까, 까만 옷은 희끗한 먼지가 붙을까 노심초사해야 한다.
그에 반해 거무스름하거나 희끄무레한 옷들은 한데 뒤섞여도 별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순수한' 것들은 다르다. 그들은 격리된다. 따로 모아두었다가, 양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만을 위한 세탁기를 돌려야 한다.
이것은 보호인가, 배척인가.
어느 쪽이든 '자연'스럽지는 않다.
하루에 세 번씩 세탁기를 돌리는 건 낭비고, 그렇다고 손빨래를 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상상한다. 동네에 흰옷만 받는 공용 세탁기와 검은 옷만 받는 공용 세탁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리고 깨닫는다.
그 ‘공용’의 공간이 ‘사회’라면, ‘순수’란 이미 모두가 나서서 '처리'해야 하는 골칫덩이가 된 셈이라고.
어쩌면 세상은 거대한 세탁기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서로의 색을 조금씩 묻히며 돌아가는 동안,
오로지 ‘순수’만이 세탁조 밖에 남아
끝내 빨리지 못한 채 먼지가 되어간다.
멋쟁이가 되기 위해선 검은 옷도, 흰 옷도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노동과 분리의 수고는
다른 누가 대신해 줬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사회랄까, 사회랄까, 사회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