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하나로 시작하는 신입 사원 교육
MZ세대의 줄임말 신조어를 따라가지 못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하나의 유머 소재로 활용된다. 누가 얼마나 줄임말을 많이 알고 있는지에 따라 ‘난 아직 젊어’를 외치며 신세대임을 자랑하거나, 퀴즈 문제에 도전하듯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선배 사원들. 조직 사회의 권력은 언제나 선배의 몫이므로 그들은 머쓱해질지언정 결코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일은 없다.
오히려 줄임말로 곤란을 겪는 쪽은 신입 사원들의 차지이다. 학교에서 절대로 배운 적 없는 해괴한 전문용어들, 아니 비공식 업계 용어들이 난무하는 곳이 바로 직장이기 때문이다. 회사마다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약자들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을 수 없으니, 신입 사원은 안 그래도 어려운 업무 이야기에 모르는 단어까지 속출하면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되고 만다.
심지어 회의록에 등장하는 김B, 이K, 박D, 최J 등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에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 김B는 김 부장, 이K는 이 과장, 박D는 박대리, 최J는 최 주임의 약자라는,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기상천외한 상상력에 한 번 더 뒷덜미를 잡는다.
이런 신입사원은 입사 후 회사의 공식적 집체교육을 통해 각종 회사 소개 및 신입사원들 간의 유대감 향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현업으로 배치된다. 신입에 대한 교육은 인사팀이 주관하는 이런 공식적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각자의 부서에 맞는 세부적 업무 파악을 위해, 조직별로 내부 교육을 추가로 진행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다만, 이 경우는 인사팀 주관의 공식 입사 프로세스와는 별개로 개별 조직에서 임의로 진행하다 보니 현업에 바쁜 선배들은 누구 하나 나서서 열정을 보이는 이가 없는 편이다. 이렇게 되면 떠밀린 선배 사원이 수년도 더 된 닳고 닳은 파일을 찾아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을 대상으로 영혼 없이 외계어를 남발하는 교육이 시행되기 일쑤이다.
그들에게는 열정 넘치면서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줄 수 있는 눈높이 강사가 필요하다. 마치 마이클 패러데이와 같은…
19세기의 영국 물리/화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저 얻어 읽은 책들과 실전 실험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과학자로 유명하다. 물리/화학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법칙은 맥스웰 방정식으로 이어져 전자기학이 집대성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게 하기도 했다.
이런 패러데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전기용량의 국제단위를 그의 이름을 따 “F”로 표기하고 패럿(farad)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패러데이는 과학의 대중화에 언제나 진심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왕립학회주관으로, 아이들을 위한 과학 강연을 펼치곤 했다.
그의 1860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6번의 강의 속기록을 윌리엄 크룩스가 편집해 “The Chemical History of a Candle”이라는 책을 남겨 놓아, 패러데이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의 원문은 1971년 마이클 하트가 시작한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터넷에 전자 문서로 등재되어 있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https://www.gutenberg.org/cache/epub/14474/pg14474.html
국내에서는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양초 한 자루의 화학사‘, 혹은 ‘촛불 하나의 과학‘ 등으로 다소 다양한 이름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다.
그는 크리스마스 대중 강연에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양초 한 자루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초에 불을 붙이고, 불꽃의 모양에서 시작해 초에서 생성되는 기체를 통해, 수소와 산소의 성질을 마치 마술쇼하듯 친절하게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패러데이는 G.O.D.의 ‘촛불 하나’ 노랫소절과 같이 그의 강연이 하나의 촛불이 되어 옆의 초를 또 밝히고, 촛불이 두 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어 어둠이 사라져 가길 염원하였다.
가끔은 신입 후배 사원에 대한 이러한 열정과 애정을 가진 패러데이와 같은 선배 사원이 나타나기도 한다. 낡은 교육 자료를 신입을 위해 새롭게 단장하고, 어려운 용어를 알기 쉬운 용어로 바꾸고, 실생활에 밀접한 촛불 같은 것들을 활용해 실무를 알려주는 그런 사원 말이다.
바쁜 업무 시간을 쪼개어 만들어낸 작은 불씨가 옥탄가 높은 신입이라는 연료에 옮겨 붙은 순간 그들은 활활 타오를 것이다. 결국 이런 작은 정성이 오랜 시간 유지되는 탄탄한 조직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패러데이의 이론이 맥스웰 방정식으로,
맥스웰 방정식이 상대성 이론을 꽃피우듯, 선배의 정성이 세계적 인재와 세계적 회사의 탄생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