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냉난방의 법칙, 그리고 물리학의 도깨비들
하루에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사무직 직원들은 빵빵한 냉난방 설비로 인해 계절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때론 계절을 역행해 여름엔 보온용 긴팔, 겨울엔 두꺼운 외투 속에 가벼운 티셔츠만 입고 출근하는 직장인들도 흔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쾌적한 직장이라 하더라도 갈등은 언제나 존재한다. 바로 냉난방기의 위치에 따른 온도차 때문이다. 처음부터 공조시스템이 완비된 최신식 사무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무실의 한 측 끝에 설치된 냉난방기로 인해, 사무실에서 어디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온도의 차가 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 따라 추위와 더위를 느끼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날이 더워지는 한 여름이나, 찬바람이 쌩쌩부는 한 겨울의 사무실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냉난방기 조절이란 공평한 세금 분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사무실의 위치별로 내가 원하는 정도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하는 공상에 딱 들어맞는 물리학의 도깨비가 있다.
바로 뉴턴 이후 전자기학을 정립하여 이제 물리학에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고, 소수점을 몇 째자리까지 정밀화하느냐만 남았다는 평가를 듣게 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등장시킨 도깨비(demon)이다.
여담이지만 라플라스의 ‘악마’도 영문은 ‘demon’이지만 유독 도깨비보단 악마로 널리 번역되었고, 맥스웰의 demon은 악마보다 도깨비로 번역된 것이 조금 더 많은 듯하다. 어쩌면 최근까지 널리 회자되는 쪽이 도깨비라는 동양적 demon보다 조금 더 서구화된 demon인 악마로 둔갑하여 퍼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두 번째 여담으로 위의 두 악마 이외에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악마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탄생시킨 데카르트의 악마가 있다. 데카르트의 머릿속에서 악마가 모든 감각기관을 통제해 데카르트를 속이고 있다면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고찰은, 보고 듣고 느낀 것,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어도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부정할 수 없으니, 그것이 곧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철학을 탄생시킨 철학하는 악마가 바로 그 이다.
세 번째 여담으로,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닐스 보어 학파와 오랜 논쟁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그때 나온 말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였고, 그에 맞선 보어의 반격의 한 마디는 ’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정도의 말이었다는 일화가 있다.
양자역학에 대해 마지막까지 무언가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 이런 식의 이론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던 아인슈타인은, 양자 얽힘*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spooky action at a distance(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
*양자 얽힘은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두 입자가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한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는 순간 나머지 다른 입자도 그 상태가 즉각적으로 결정되는 현상, 마치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순간적으로 전달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의미한다.
Spooky야말로 ‘도깨비 같은 ‘으로 번역할만할 것 같지만, 대체적 번역은 ’ 유령 같은 ‘이 차지하고 있다. 또 하나의 물리학의 도깨비는 유령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의 주인공은 맥스웰의 도깨비이다.
온도가 일정한 방 한가운데 도깨비가 문이 달린 벽을 설치한다. 그런 후 분자들의 움직임을 잘 관찰하고 있다가 빠르게 움직이는 분자는 오른쪽 방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분자는 왼쪽 방으로 넘어가도록 문을 여닫는다고 상상해 보자. 곧 오른쪽 방은 왼쪽 방에 비해 공기 중의 분자들이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가 될 것이다. 분자들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그 방의 온도는 높아지므로, 온도가 똑같았던 양쪽 방은 어느 순간 오른쪽 방은 온도가 높아지고 왼쪽 방은 처음의 온도보다 온도가 내려가는 기이한 상태가 되고 만다.
이는 닫힌 계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쉬운 말로 바꾸자면, 에너지는 항상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 빠른 분자들은 빠른 분자들끼리, 느린 분자들은 느린 분자들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무질서하게 섞이며 평균 속도가 평행에 이르게 되어, 온도가 같아지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 열역학 제2법칙인데, 도깨비의 작용은 이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빅뱅 이후 모든 열이 무질서하게 퍼져나가서 결국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열적 죽음‘이라는 우주의 종말을 예측하는 무시무시한 이론의 배경이기도 하다.
맥스웰이 이런 도깨비를 떠올린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이 정말로 맞는지를 검증해 보고자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후대에 도깨비가 벽을 설치하는 일, 분자들을 관찰하는 일, 선택적으로 문을 여닫아 분자들을 통과시키는 일, 이 모든 것들에도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결코 열역학 제2법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는 논증으로 맥스웰의 도깨비는 연기처럼 사라지기는 했다.
사무실의 온도 투덜이들 앞에 맥스웰의 도깨비가 나타나 각자의 자리에 맞는 분자의 속도로 공기를 제어해 문을 여닫아 준다면, 모두가 만족하는 이상적인 사무실이 될 것만 같다.
근래에는 코로나 판데믹의 대변화를 겪으며, 먼저 출근한 사람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선착순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무실도 있다고 하니, 맥스웰의 도깨비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부지런한 직원이라면 일찍 출근해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미리 감지해 라플라스의 도깨비와 같은 권능으로 좋은 자리릴 꿰찰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