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버스 자리 잡기
우리나라 유명 대학들은 대부분 서울 혹은 지방의 거점 도시들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반해 공대생들, 특히나 이공계 졸업생들의 직장은 IT업계를 제외하자면 생산 공장 중심인 경우가 많고 필연적으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보다는 조금은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따라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회사 근처 거점도시들로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도 그런 회사들 중 하나로, 새벽부터 곳곳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운영 중이다.
45인승 정도 되는 관광버스를 타면,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가운데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 각각 두 자리씩 배치된 셔틀버스에 사람들은 두 자리 중 한자리를 비워두고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모든 자리에 사람들이 한 자리씩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제야 나머지 비어있는 옆자리를 채워서 앉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양자역학에서 훈트의 법칙이라 불리는 전자의 오비탈 채우기 법칙과 너무 비슷해 보인다.
훈트의 법칙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원자 내 전자의 확률 분포 궤도인 오비탈에는 각각 전자가 2개 들어갈 수 있는데, 이때 한 오비탈에 전자 2개가 먼저 채워지기보단, 모든 빈 오비탈에 전자가 1개씩 우선적으로 채워진 이후에야 각 오비탈에 비어있는 나머지 한 자리를 채워가며 각 오비탈의 두 자리가 차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전자끼리의 반발력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우리도 본능적인 반발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두 자리가 있음에도 서로 바로 옆자리보다는 다른 빈자리를 먼저 찾아가니 말이다. 아니 우리의 본능적 반발력이 어쩌면 우리 몸을 이루는 수많은 전자들의 반발력인 것일까?
직장인들의 강력한 반발력에 비해 이와는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관광버스도 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버스를 생각해 보면 이런 반발력의 작용은 한층 약해지고, 두 자리에 짝을 먼저 이루어 탑승하는 경우가 더 흔한 것을 알 수 있다.
분자들 간 전자의 오비탈을 공유하여 분자오비탈을 형성하듯, 그들 간에는 분명 “케미스트리”가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