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뜨는 달
[이번 표지와 글에 첨부된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을 사용했다.]
“보는 사람이 없으면 달도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하며 한 말로 유명하다.
코펜하겐 해석이란 양자역학의 주 해석 중 하나로, 관찰자가 관찰하기 전까지는 양자 입자의 상태(위치와 운동량)가 확정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즉, 관찰하지 않았을 때에는 입자는 어딘가에 있을 확률만 있을 뿐이고, 관찰하는 순간 비로소 확률함수가 ‘붕괴’하며 그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아리송한 해석에 대한 또 다른 가장 유명한 비판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이다. 양자역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말만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방사성 물질과 가이거 계수기, 그리고 독극물이 든 병과 망치, 이렇게 네 가지로 구성된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있다.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면 가이거 계수기가 이를 감지하고, 계수기가 반응하면 망치가 독극물이 든 병을 깨, 독극물이 누출되도록 고안된 상자에 놓인 운명의 고양이.
이때 방사성 물질이 붕괴할 확률이 1시간 후 50%라고 한다면, 1시간 후 고양이는 독극물에 노출되어 죽었을 수도 있고, 독극물이 누출되지 않아 살아 있을 수도 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방사성 물질의 붕괴 여부는 1시간 후 뚜껑을 열어 관찰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고, 두 상태가 모두 가능한 중첩된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에 따라 고양이라는 거시적 생명체의 생사마저 뚜껑을 열어 관찰하기 전까지는 결정되지 않고, 산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된 상태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간단히 설명한다고 말했지만, 간단히 이해할만한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다.)
이렇듯 현실 역학을 반영하는 수식은 만들어졌으나, 실재의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이 일반의 상식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양자역학의 어려움이자 신비로움이다.
다시 아인슈타인의 달로 돌아와 보자. 아인슈타인은 관찰하든 그렇지 않든 하늘에는 언제나 달이 정해진 위치에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다. 물리적 실재는 관찰과는 무관하게 존재하고, 물리학이란 예측 가능해야 하는 것이라는 상식적 믿음이었다.
하지만 양자역학으로 확인한 물리적 현실은 우리의 인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상황이다. 요즘 시대의 비유로 따지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아직 가보지 않은 검은 영역의 맵에 발을 딛는 순간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가 결정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 그렇다면 과연 달은 존재하는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면 그 어느 별보다 커다랗게 떠 있는 물체.. 별자리를 찾는 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지 몰라도 달만은 누구나 한 번에 찾을 수 있을 만큼 압도적 존재감을 뽐낸다.
하지만, 어릴 적 들었던 전래동화 ‘해님달님’처럼 낮이 되어 해가 중천에 뜨면 그 존재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 또한 달의 본질이다.
그런데 해가 뜬 이후에도 세심히 관찰하다 보면 하늘 어느 구석에 달이 여전히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날이 있다. 파란 하늘에 하얗게 뜬 하현달이 바로 낮에 뜨는 달의 정체이다.
해가 뜨면 달은 강렬한 햇살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묵묵히 해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회사에서 주목받지 못해도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며 회사를 지탱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회사에서 대낮의 태양처럼 주목을 받는 자리는 언제나 팀을 대표하는 팀장이나, 팀의 ‘에이스’ 사원의 차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그 둘 만으로 팀이 굴러갈 수는 없다.
그들이 화려한 태양이라면, 그들 옆에서 보이지 않더라도 궂은 일을 처리하는 은둔형 조력자들은 달이라 할 수 있다.
달이 하늘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지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회사의 성패를 결정하는 실체일지도 모른다. 다만 하늘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낮에 뜨는 달을 볼 수 없듯, 세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들의 존재와 역할을 찾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비록 양자역학의 해석에서는 아인슈타인이 판정패했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의 존재가 관찰되지 않는다고 결코 없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가끔 하늘을 보다 발견하는 낮에 뜨는 달은 아름답고도 반가운 존재이다. 오늘만큼은 눈길을 땅으로 돌려 회사의 숨은 공로자들의 고마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