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속도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건 용기와 도전이 함께 따라온다.
가족을 떠나 낯선 땅에 새 둥지를 틀고 앞으로 살아갈 터전을 일구는 일. 그것은 드넓은 평지 한가운데 집을 짓는 일과 닮아 있다. 연고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스스로 터를 잡아야 하는 삶은 단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계절이 몇 번 바뀌면서 조금씩 윤곽을 갖추기 시작한 나의 도시.
낯선 사람들, 문화, 규칙과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캐나다에 여행 한 번 와본 적도 없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얀 도화지 같은 나라.
그곳은 한국에서 모르는 도시를 여행하듯 설렘과 기대만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문화에 익숙해지는 시간은 긴장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와 나를 짓누르기도 했다.
세상은 넓었고, 나는 그 넓이만큼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조금은 안정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버티고 적응하는 방식이 내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삶의 터전을 옮긴 뒤 일 년, 이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다녀올 때면 이제는 반대로 한국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다. 줄임말과 새로 만들어진 단어들, 복잡해진 지하철 노선, 익숙해야 할 앱들조차 어색했다.
길거리에서 손을 흔들어 빈 택시를 기다리는 풍경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스마트폰 안에서 보이지 않는 택시를 불러 올라탈 때, 나는 예약 등을 켠 채 무심히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길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시대에서 온 사람처럼. 친구와의 약속 장소를 찾기 위해 네이버 길 찾기를 한참이나 헤매던 날. 거미줄처럼 복잡해진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구글에 익숙해진 나는 한국에서조차 외국인처럼 서 있었다. 한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그 속도 속에서 나는 잠시 혼자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었다. 도시가 내 체질이라 믿으며 살았던 내가 이제는 그 속도를 따라잡는 일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한국에 가면 캐나다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한국과 캐나다, 캐나다와 한국.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작은 점 같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두 세계를 유영하는 점. 하지만 어쩌면 세상이 넓다는 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안이 아니라 두 곳을 모두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시선일지도 모른다. 빠른 곳에서 느림을 배우고, 느린 곳에서 속도를 이해하는 일. 그 사이에 서 있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제는 혼잡하고 복잡한 도시보다 자연과 어우러진 이곳의 정적이 더 편안하다. 속도가 느려진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수진아, 넌 도시가 어울려.”
친구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이제는 아닌 것 같아.”
그 짧은 대답 속에는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이 담겨 있다. 지금은 나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겠지. 사람은 결국 환경에 맞추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 속에서 자신을 다시 만들어가는 존재니까. 그리고 나는 이미 그 일을 해본 사람이니까.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