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문화 속, 직장 동료들과의 이야기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한국에서는 여자가 초콜릿을 주고, 3월 14일에는 남자가 답례하는 화이트데이가 따로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그런 구분 없이 남녀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어제 오후의 따스한 햇살 덕분에 쌓였던 눈이 녹았고, 출근길은 한결 수월해졌다. 눈이 온 덕분에 하루 쉬었을 뿐인데 며칠 휴가를 다녀온 듯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웠다. 어제의 하루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빨간 카드와 함께 책상 위에 누군가 초콜릿 하나를 두고 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모두 출근 전이었고, 책상에 앉아 있는 건 ‘아만다’뿐이었다.
“고마워! 아만다. 너 정말 스윗하구나!”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아만다는 활짝 웃으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해피 밸런타인데이, 수!” 참 사랑스러운 동료다.
초콜릿을 한 입 깨물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회사 이메일을 확인하며 동시에 어제 찍은 사진들을 둘러보던 중, 문득 캡처해 둔 네이버 창이 눈에 들어왔다.
"수진님, 생일 축하해요!"
매년 생일이면 네이버 메인 화면에 뜨는 화려한 풍선들과 함께 적힌 내 이름. 작년에도 그랬듯, 무심코 열어본 네이버 메인에서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한 줄 메시지가 또 한 번 나를 감동시켰다. 별것 아닌 일에도 감동받게 되는 게 타국에서의 삶이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도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침 출근한 내 앞자리에 앉는 ‘발렌티나’가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굿모닝, 수! 무슨 일이야? 너 지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데.” 그녀의 말에 네이버 화면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내 이름이 적힌 풍선들이 화면 가득 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웃었다.
"발렌티나, 이것 좀 봐! 한국의 구글 같은 사이트 메인 화면에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문장이 써 있어!"
내가 신나서 화면을 보여주자, 발렌티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정말? 와! 이탈리아에도 한국처럼 생일을 축하해 주는 사이트가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아!"
“이게 내 생일 축하 메시지야.” 발렌티나는 사진에 있는 네이버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와, 너무 멋진데? 정말 특별한 순간이네!” 그녀의 말에 나도 덩달아 웃었다.
그녀도 나처럼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이탈리아를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캐나다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며, 캐나다에서 태어난 사람들과는 또 다른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다. 마치 이런 느낌이 아닐까?
서울에서 살다가 설이나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아 내려갈 때, 톨게이트나 도로 곳곳에 걸린 "고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마주할 때의 기분. 짧은 문장 하나에 담긴 따뜻한 위로와 반가움, 그리고 편안함.
타국에서 맞는 또 하나의 생일,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오늘. 그렇게 내 하루는 따뜻하게 시작되었다.
그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렌티나’가 쇼핑백에서 작은 초콜릿 케이크를 꺼내 내밀었다.
"수! 나도 네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어서 어젯밤에 줄이 길~게 늘어선 케이크 가게에서 이걸 샀어!"
그녀는 자랑스럽게 다운타운에서 유명한 일본식 치즈케이크를 들어 보였다.
"아! 나도 ‘수’를 위해 코코넛 파이를 준비했는데!"
이번엔 ’리즈메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따뜻한 손길들. 이렇게 또 다른 다정한 순간들을 쌓아가고 있다.
생일이 어제였는데, 오늘 또 한 번 생일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어제도 충분히 행복했지만, 오늘은 어제와 또 다른 생일이었다. 회사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니, 문득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맞았던 생일이 떠올랐다.
한국 회사에서는 분위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총무팀에서 같은 달에 생일인 직원들을 파악해 퇴근 시간쯤 팀원들이 단체로 축하해 주고, 케이크를 함께 나눠 먹곤 했다. 내 생일이었을 때도 팀원들에게 점심을 사고, 팀원들은 나에게 선물을 주었으며, 회사에서는 큰 선물보다는 기프트 카드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가까운 동료들과는 따로 선물을 주고받기도 했었고, 이런 생일 문화 덕분에 한 달에 한 번씩 각 팀이 한자리에 모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캐나다에서는 아침에 축하를 해주는 반면, 한국에서는 주로 퇴근 무렵에 축하를 받았던 것 같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일까?
캐나다에서는 출근하자마자 이메일로 축하 메시지를 받는다. 아침에 축하를 받으면 하루 종일 좋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에서는 바쁜 업무를 마친 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다 함께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캐나다는 "하루의 시작을 축하하는 문화" 개인 시간을 존중하고, 업무 중간에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와 한국은 "업무가 끝나갈 때 분위기를 풀어주는 문화" 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을 까? 캐나다와 비교하면, 한국은 조금 더 정이 느껴지는 생일 문화인 것 같다.
이런 작은 차이도 흥미롭다.
우리 팀원들이 도착하자 초에 불을 붙이고 ‘발렌티나’가 나에게 물었다.
"수, 한국말로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는 어떻게 불러?"
나는 노래가사의 발음을 영어로 적어 주었고, ‘발렌티나’는 이탈리아어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곧, 한국어로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 발음이 너무나도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웃음이 터졌고, 동시에 놀라웠다.
살면서 외국 친구들이 여러 언어로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일이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
순간 전율이 흘렀다. 나는 웃고 있었지만, 눈물이 났다. 매일 8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며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동료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즐거움은 단순히 디자이너로서의 만족감 때문만이 아니다. 매일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야말로, 내 일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자 ‘발렌티나’가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탈리아인 동료가 자연스럽게 따라 불렀다. 이어 스페인어로 ‘리즈메리’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사무실 안은 영어, 한국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가 어우러진 생일 축하 합창으로 가득 찼다.
"내가 캐나다에서 이런 멋진 동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특별한 순간이 내게 찾아왔을까?"
그 순간, 나는 그저 행복했다. 노래가 끝나고, 동료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들었다.
마치 돌잔치를 맞은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처럼, 모두가 내게 카메라를 향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Soo! Look here!"
"Yeah, hold the cake and look here." "Soo! You're so cute!"
"I really think you guys are the cutest!"
다들 크게 웃으며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데, 오너가 꽃과 함께 선물을 건넨다.
"Soo! Did you have a wonderful birthday yesterday? I believe it must have been a really special one for you!"
"Thank you, Michelle. Everyone made me so happy"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Soo! You make all of us so happy." 그녀는 다정하게 말하며 두 팔을 벌려 나를 꽉 안아주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서로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캐나다에 살고, 회사를 다니면서 화려하진 않지만, 한국과 또 다른 동료들과 느끼는 유대감이 있다. 문화의 차이도 느낄 수 있고, 서로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며, 다른 삶의 방식에서 내가 배우는 것들이 많다. 우리가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들이 쌓여가는 게 소중하다.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 작은 일에 위로하며, 힘들면 다 같이 애써주는 그 마음들이 너무 따뜻하다. 가끔은 내가 힘들 때, 그들이 건네는 한 마디나 작은 행동이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이런 순간마다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옆에 동료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어쩌면, 낯설고 어색했던 캐나다의 회사 생활에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바로 옆에서 함께 힘을 나누고 웃어주는 동료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과 함께라서 내가 더 용기를 내고,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매일 느낀다. 내가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매일의 즐거움을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내가 속한 이 작은 공동체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행복을 나누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생일 축하해! 수진"
그 작은 메시지가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 마음을 받은 나는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