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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속 캐나다 디자이너의 일상

눈이 오면 출근보다 이메일 체크가 먼저

by 이수 E Soo

아침이면 늘 하듯 CBC 라디오를 켜 캐나다의 아침 뉴스를 듣고, 네이버 앱을 열어 한국 소식을 훑는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다는 기사와 눈에 띄는 헤드라인

"부장님 눈 폭탄이 와요, 조퇴할게요"... 서둘러 가방 싼 직장인들

한국 곳곳이 눈으로 뒤덮여 길이 막히고, 퇴근길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금 전 친구의 인스타그램에도 폭설 소식이 올라왔다. 잿빛하늘이 계속 눈을 쏟아낼 것 같다는 글과 함께.

그렇게 서울과 여러 지역 들은 눈으로 인해 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하고 있었고,

그 뉴스를 읽는 순간,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눈폭탄으로 안한 아침 뉴스

그날도 폭설로 도로는 마비되었고, 차들은 뒤엉켜 엉금엉금거북이걸음을 했다. 곳곳에서 미끄러지는 차량들, 경적 소리, 엉킨 교통. 다행히 나는 회사 근처에 살고 있어 두 발로 처벅처벅 슬러시가 된 눈길을 걸어갔지만, 옆을 지나는 차들의 속도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날은 새해가 시작되는 1월 2일. 회사에서는 시무식을 준비하며 전 직원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들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직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9시가 출근시간인데, 손가락에 뽑을 정도의 몇몇을 제외하곤 직원들은 사무실에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 팀에도 나 외에는 아직 출근전이다.

"디자인 3팀, 모두 아직 출근 전인가? 시무식이라고 미리 공지했는데 아직이라니.."

오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내 앞에 동그란 두 개의 큰 유리창을 번가라 가며 바라봤다. 함박눈은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밖은 여전히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데 직원들 입장은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나지막한 혼잣말을 했다.


"아... 이런 날 시무식이 그렇게 중요한가?"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중요할 터였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 2일, 오너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시무식 인사말도 중요한 행사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도로는 마비 상태이고, 직원들은 폭설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겨우 출근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전 직원이 모이기까지 한 시간 반 이상이 걸렸고, 그제야 시무식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폭설이 쏟아지든, 장마로 비바람이 몰아치든, 회사에는 정시에 출근해야 했고, 퇴근도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 가능했다. 그 모습이 한국에서의 나의 직장생활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의 한국직장 생활보다 나아졌겠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은 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보낸 공지 이메일과 메세지


같은 폭설이라도 한국과 캐나다의 직장 문화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 캐나다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나는 폭설이나 자연 예보로 인한 출퇴근 배려가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회사 이메일을 연동해두지 않은 나를 배려해 따로 메시지가 왔다.

"폭설 예보로 인해 3시간 후에 출근하세요."

캐나다는 눈이 많이 내리는 나라이기도하고, 대부분 차로 출퇴근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이런 배려는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폭설 예보가 뜨면, 전체 이메일 공지를 통해 2시 30분쯤 조기 퇴근하라는 회사의 결정을 따르기도 한다.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았던 일과 지금 이곳, 캐나다의 직장생활은 이렇게 다른 문화이다. 이제는 아침이나 오후에 눈이 많이 내릴 것 같으면 나도 모르게 회사 이메일을 먼저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한국과 캐나다를 단순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 사이에서 배려는 너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함께 생각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태도와 존중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배려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얼마나 배려하며 살고 있을까?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이기적인 모습이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고, 그렇게 바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눈이 내리는 출근길, 차 안에서 Positive Focus 음악을 들으며, 한국에서 오빠가 직접 만든 드립커피를 마시며 느리게, 천천히. 오늘 하루도 그렇게 흘러가길 바라며 출근했던 날이었다.


Soo+

밖은 눈이 내리지만, 나는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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