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쉴게요.
어제부터 아팠던 머리는 아침까지 이어졌다. 아침 6시 10분 알람소리가 울리기 전, 이미 일어나 앉았다.
여전히 무겁고 욱신거리는 머리를 감싸 안고, 열이 있는지 체온계를 귀에 넣어 측정 버튼을 눌렀다.
38도. '아, 나 지금 아픈 거구나' 아프다는 생각이 들자 목도 아픈 것 같고, 코가 막힌 느낌도 들고, 왠지 온몸이 다 아픈 거 같다. '감기인가? 그래, 오늘은 집에서 쉬어야겠다. 회사에 이메일을 보내야지.'
사실, 어제 오후가 되니 갑자기 온몸이 춥고 머리가 아팠다. 사무실 안에서 패딩을 입고 후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동료들은 나의 상태를 체크하고 따뜻한 차를가져다주었고,내 앞에 앉아있는 동료는 이태리에서 온 감기약 하나를 건넸다.
"어? 나도 타이레놀 있어. 그거 먹을 게, 고마워."
발렌티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이거 이태리에서 보내준 감기약인데 금방 나을 거야, 먹어봐. 삼키지 말고 혀에 놓고 녹여먹어."
나는 그녀가 준, 마치 레모나 같은 감기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처음 먹어보는 이태리 감기약. 아무 맛도 나지 않고, 향기도 없다. 하지만 이 감기약이 내 두통을 사라지게 할 것 같았다.
한 시간 후, 그녀는 나에게 묻는다.
"Soo! 괜찮아? 내가 준 감기약 먹으니 좀 어때? 타이레놀 보다 낫지 않아?"
그녀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발렌티나, 다 나은 거 같아!"
그렇지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두통이 아침까지 이어진 거다.
회사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 잠시 고민했다. Sick day off를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금요일인데 쉬는 게 너무 아깝지 않나? 월요일이나 주중도 아니고. 하지만, 어제 오후처럼 빨리 퇴근하고 싶어 시계만 쳐다보며 모니터만 보고 싶지 않았다. 어제를 생각하니 갑자기 답답해졌고, 하루가 너무 길거 같았다.. 오늘은 일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오너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Good morning,
I’m not feeling well and need to take a sick day today. I’ve been experiencing a strong headache since yesterday and have cold symptoms as well. I’ll be resting at home to recover, and I expect to feel better soon. I’ll return to work on Monday.
Thank you for your understanding.
간단한 이메일을 보내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밝은 빛을 차단한 커튼을 쳐 놓은 방에 다시 눕고, 조금이라도 새어 나오는 빛을 막기 위해 안대를 찾아 눈을 덮었다.
어둠 속에서 편안함을 찾고, 잠시라도 나만의 고요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정신이 또렷해진 탓에 다시 잠이 올리가 없다. 그래도 쉬고 싶었다. 깊은 잠에 빠져 생각을 멀리하고 두통이 사라지길 바랐다. 'Calm vibes' 음악을 틀어, 고요한 선율이 방 안을 가득 채우도록 했다.
고요한 선율이 방안에 가득하고 그 음악은 나를 릴랙스 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빛을 다 차단한 방이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머리는 여전히 아픈데, 집 안에 있자니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고자 차를 몰고 밖을 나왔다. 집을 나서는 순간, 햇살이 가득한 밖의 공기가 내게 닿았다.
며칠 동안 흐리던 날씨와 차가운 기온에 안에만 있었는데,오늘 햇살을 보자, 마치 축 늘어져 있던 식물들이 햇살을 받아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햇살 속에서 모든 것이 다시, 기운을 되찾는 듯했다.
추위도 상관없을 정도로 기분이 확 좋아졌다.
갑자기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언제 아팠는지 모를 정도로 기분이 나아졌다.
일단 커피 한 잔과 달달한 케이크가 필요했다.
캐나다의 스타벅스는 한국과는 달리 달콤하고 부드러운 다양한 케이크가 없다. 대신 심플한 빵들과 과자, 그리고 간단한 샌드위치뿐이다. 오늘따라 무척이나 아쉬웠다. 12월에 한국에서 먹었던 부드럽고 달달한 케이트들이 생각났다. 스타벅스에 들러 자주 주문하는 flat white를 시키고, 창가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가까운 호수'라고 검색하자, 몇 개의 호수가 거리순으로 나왔다.
새로운 장소를 찾는 걸 좋아하는 나는, 가보지 않은 곳을 클릭했다.
낯선 곳에 도착했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단단해진 나무들은 앙상하게 서 있고, 녹지 않은 눈을 밟으며 호수 근처로 걸어갔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눈 덮인 풍경이었다. 나는 물가가 펼쳐질 거라 기대했지만, 그곳은 꽁꽁 얼어버린 호수였다.
추운 날씨와 많은 눈 덕분에 호수는 이미 얼어버린 지 오래였다. 얼음의 두께는 약 10센티미터 정도였다고, 얼음낚시를 하고 있던 캐네디언의 말했다.
캐나다에 살면서 이렇게 꽁꽁 얼어버린 호수는 처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를 상상해 봤다.
나는 그 얼음 위를 걷기 시작했다. 눈이 덮여 호수 밑이 보이지 않아 깨질 거 같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호수의 중간지점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하얀 눈이 쌓인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맑은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은 솜사탕 같이 폭신해 보였다.
바람이 내 마음속 답답함을 스쳐 지나며, 무거웠던 마음을 가볍게 날려 버리는 듯했다. 상쾌함이 밀려왔다.
오늘 회사에 가지 않길 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살에 인사하지 못했을 거고,
하얀 눈이 쌓인 얼어버린 호수를 걸어보지 못했을 거다.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지 못했을 것이고,
두꺼운 얼음을 뚫고 낚시하는 모습도, 자랑스럽게 잡은 커다란 물고기를 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상 속에서 나는 위로를 얻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늘의 쉼 덕분에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