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순간이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살짝 열어보니, 밤새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나무들은 하얀 옷을 입은 듯 포근해 보였고, 겨울바람에 시린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오늘 그 겨울나무들은 따뜻해 보였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고 싶어 장화를 꺼내 신었고, 두터운 겉옷을 걸친 채 차를 몰고 밖으로 나왔다. 도로를 천천히 달리고 양옆의 나무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밖은 영하 -10도의 추운 겨울,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조금 더 늦잠을 자도 되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눈이 다 녹기 전에 이 포근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차가운 눈이 따스한 햇살에 녹듯, 지금 느끼는 내 감정이 스르르 녹아내리기 전에.
사랑스럽게 쌓인 하얀 눈은 곧 녹아 사라질 것이고, 푹푹 빠질 듯 깊이 쌓여있는 눈길을 걷는 기분도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눈보라가 치는 호숫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도 잠시 후면 사라질 테니까.
시린 손끝으로 카메라를 들어 사각 프레임 안에 세상을 담아보려 하지만, 그 순간의 감동을 온전히 담기엔 늘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찰나를 눈으로 담고 마음에 기록해 두고 싶다.
차로 약 40분을 달려 호숫가에 도착할 즈음, 하늘은 어느새 잿빛으로 변했고,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과 눈보라가 내 뺨을 스쳐 지나간다. 주변은 바람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가 마음에 닿는 순간 나는 말했다.
"와! 멋지다!"
"여기 오길 정말 잘했어! 이런 순간을 또 언제 볼 수 있겠어?
나는 아이처럼 크게 웃었다. 너무 좋아서,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 여기,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 행복해서.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호숫가가 많다. 나는 늘 계획하지 않은 어느 날, 이렇게 어딘가를 찾아간다.
그럴 때마다, 생각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기대하지 못한 일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으로 보면 다 똑같은 호수 아냐? 그 호수가 그 호수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모든 자연은 내 마음 상태에 따라 결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쁜 날, 우울한 날, 마음이 아픈 날, 행복한 날, 스트레스를 받은 날, 상처받은 날, 그리고 누군가가 그리운 날.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다.
그날의 감정과 기분, 날씨와 바람의 결, 햇살의 강약, 그리고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오늘 찾은 호수도 처음 오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 덮인 풍경 속에서 마치 처음 온 것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아마도 오늘의 시선이, 오늘의 계절이 나에게 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이겠지.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행복해서 이곳에 왔다.
2월의 겨울은, 이렇게 아름답다.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