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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27. 2021

스웨덴 룬드에서 석사 논문을 쓰기까지 -1-

석사 연구의 시작

이 전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스웨덴 룬드 천체물리학과 석사 프로그램에서는 연구를 1년 반 동안 해서 논문을 쓴다. 첫 학기에 이미 주제와 지도 교수가 정해지고 두 번째 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내 연구분야의 미팅들에 참석한다. 오늘은 논문 주제를 정하고 처음 연구를 시작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1. 주제와 지도 교수 정하기

2. 연구 시작과 발표, 그리고 미팅 참석

3. 첫 번째 중간발표

4. 초안 제출

5. 두 번째 중간발표

6. 완성본 제출

7. 졸업 발표

8. 수정 후 최종 제출


주제와 지도 교수 정하기

첫 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뒤면 신입생들에게 얇은 책자 하나가 나눠진다. 그 책자 속에는 교수, 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들이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연구 주제들과 관련 논문들이 정리되어 있다. 나와 같은 년도에 학교에 들어온 석사생들은 총 12명이었는데 주어진 연구 주제는 대략 20개가 넘어갔다. 최대한 넓은 풀에서 마음껏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고를 수 있도록 항상 학생수 보다 2배 정도 많이 연구 자리를 만들어 둔다고 했다. 미국에서 연구를 할 때는 연구 자리가 너무 부족해서 항상 다른 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했는데 여기선 경쟁보다 내가 진짜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뒀다는 게 놀라웠고 스웨덴이 다시 한번 더 좋아졌다.

책자를 나눠준 후 2주의 시간을 주는데 그 시간 동안 주어진 연구들을 알아보면서 흥미가 있는 주제를 골라둔다. 골라둔 주제들을 석사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에게 제출하면 코디네이터가 주제를 제공한 지도 교수, 연구원들과의 미팅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러면 또 2주 동안 여러 교수, 연구원들과 미팅을 하면서 그 주제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듣는다. 2주 동안의 미팅이 끝나면 다시 또 2주 간의 고민의 시간이 주어졌다.


2주 동안 충분히 고민하고 주변의 조언을 들으면서 내가 선호하는 연구들에 순위를 매긴다. 1번부터 8번까지 하고 싶은 연구들에 순위를 매기지만 실제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연구는 1~3번 정도까지이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순위를 제출하면 코디네이터가 "maximizing the happiness in total (행복의 총량을 최대로 만드는 것)"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연구를 배정해준다. 나는 그렇게 2번 순위를 내 연구 주제로 배정받았다. 사실 1번은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 하고 싶어 해서 거의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이렇게 연구 주제와 지도 교수를 정하고 나면 첫 학기가 거의 끝나 있고 지도 교수와는 다음 학기에 언제쯤 만날 지를 정한 뒤 나는 첫 학기의 기말고사에 집중했다.


연구 시작과 발표, 그리고 미팅 참석

두 번째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지도 교수와 첫 미팅을 했다. 지도교수는 내가 읽어볼 논문들과 기본 배경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 날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는데, 그건 내가 이 전에는 이 연구에 대해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엎어진 물이고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해보고 싶었던 분야였기에 슬며시 떠오르는 불안을 억누르고 마음을 다잡았다.


연구를 시작하고 한 달 뒤면 학과 전체 미팅에서 간단한 발표를 한다. 자료를 준비할 필요도 없이 대략 5분 분량의 내가 어떤 연구를 시작했는지를 소개하는 자리다. 5분뿐이라지만 그래도 수많은 교수들과 연구원들, 다른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는 게 상당히 긴장됐고 나는 스크립트도 만들어서 지도 교수에게 몇 번이고 확인을 부탁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발표를 끝마치면 청중들은 질문을 하는데 내가 받은 질문들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답이라곤 "음... 내가 아직 거기까지는 공부를 못해서 잘 모르겠어"였다. 연구를 시작한 지 이제 막 한 달 밖에 안됐는데 능숙하게 답변하는 게 더 이상한 거였지만 그때는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는 잔뜩 긴장했었다. (이 발표와 질의응답을 모두 지켜본 지도 교수는 나중에 둘이 있을 때 질문자가 너무 짓궂었다며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내 연구와 관련된 그룹 미팅에 참석하기 시작한다. 원래 같았으면 학과에서 가장 활발한 미팅을 하는 그룹에 소속되어 여러 미팅에 참석해야 했지만 지도교수는 왜인지 나에게 학과 전체 미팅 외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지도 교수의 배려였다. 개인 연구로도 바쁠 텐데 어쩌면 관련성이 낮거나 너무 어려운 미팅에 참석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아예 참석 안 하는 게 더 낫다는 의미였다. 큰 연관성이 없는 연구 미팅에 치이는 친구들을 보면서 지도 교수의 배려에 감사했다.


연구를 일찍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오랜 기간 어떤 연구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알아볼 시간을 가졌다. 첫 시작에선 내 예상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나름 즐겁게 연구를 할 수 있는 주제였다. 만약 충분한 시간도 없이 허겁지겁 연구를 시작했다면 어땠을지 눈앞이 아찔하다. 그리고 연구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술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된 학과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나 친절했고 뭐든 도와주지 못해 안달인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석사 과정 2년 동안 단 한 번도 내 길에 대해서 자신 없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곳에 남아있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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