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오랜만에 만난 또라이
세상은 넓고 인간은 다양하다.
최근 엄청난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과 약 1시간의 대화 이후 나는 심장이 두근거려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충격적인 경험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니 어떻게 이런 사람이 존재하지?"
나는 연구도 하고 있지만 부업으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일이 있다. 대단한 전문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짧다면 짧은 경험들을 인정해주시는 분이 나에게 과분한 역할을 맡겨주셨다. 이 임무를 최대한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나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고 더 공부해 나가면서 나름 나쁘지 않게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 주 업무 중 하나는 어떤 결과물에 대해 더 좋은 실적과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해 피드백을 전달하고 수정사항이 필요하다면 수정을 요청하는 일이 있다. 사실 수정에서 내가 원하는 최고의 기준을 요청하고 실제로 적용이 된다면 이 결과물을 만드신 분은 당장 대기업으로 모셔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아니었고 결과물을 내는 분들의 사정과 능력을 고려해서 피드백과 수정 요청을 전달해왔다.
늘 그렇듯 평상시대로 피드백과 수정 요청을 이메일로 보내고 난 나의 일상을 보내던 중 미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상대의 연락이 왔다. 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 한 채 "열정적인 분이시다!" 하며 신나서 미팅에 응했다. 미팅에 들어가서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론은 나의 수정 요청이 마음에 안 들고 나는 이 결과물을 위해 이런 노력을 쏟아부었다. 난 진지하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건데 너무 버겁다... 였다.
그때까지도 난 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일이 너무 많으면 (난 한 번도 그렇게까지 일을 벌이라고 한 적이 없다. 스스로 일을 벌이고 감당 못하는 상황이었다) 스트레스받을 수 있지 하며 일을 최대한 나눠서 차근차근할 수 있도록 접근해 봤지만 그것도 싫다고 하셨다. 얼른 끝내버리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다시 일을 최대한 간단히, 어느 정도의 퀄리티는 유지하며, 포기할 건 포기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바꿨다. 하지만 이때 내가 들은 소리는 내가 너무 unprofessional 하다는 것이었다. 최고의 결과물을 뽑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이 그러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지금껏 내가 해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지적당하며 내가 비전문적이라는 걸 만난 지 10분도 안된 사람한테서 들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너무 충격이라 아무 말도 못 했었다. 그도 그럴게 이 미팅 직전에 최종 관리자 분과 미팅을 했는데 너무 잘하고 있다며 잔뜩 칭찬을 받았고 평소에도 브랜드 성격상 우리가 나아갈 방향, 취해야 할 행동들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거기에 맞춘 나의 행동들에대해 이 영역에 한 번도 발 담가보지도 않았던 심지어 이번이 처음인 사람에게 지적질을 당하다니.... 최종 관리자 분도 나한테 이런 지적질을 하신 적이 없는데...
심지어 나의 결과물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면서 이건 별로고, 저건 매력이 없고, 왜 이런 식으로 한 건지 이해가 안 되고, 차라리 본인이 하는 게 더 낫고.... 그때는 하나하나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우리의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를 열심히 설명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한 마디 날려줄 것 그랬다.
"알지도 못하는 분이 참 주제넘으시네요. 그렇게 맘에 안 들면 하던 거 백지화하고 떠나시면 되겠어요."
나는 일단 이 미팅을 끝내고 싶었다. 머릿속이 너무 어지러워서 아무 생각도 안 났고 표정관리도 점점 버거워졌다. 하지만 이 분은 날 놔주지 않았다. 장장 1시간 동안 본인 pr과 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팅을 끌어갔다. 심지어 이제 업무적으로 할만한 지적질이 모두 끝나자 석사를 마친 나에게 앞으로 뭐할 거세요?라고 물어봤다. 그리고 난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 이건 절대 대답해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냥 자리 찾아보고 있어요. 하고 어물쩡 넘어가려는데
"아 제가 민감한 질문을 드렸나요? 하하 요즘 힘들 텐데 제가 너무 민감한 주제를 꺼냈네요."
이때 진심으로 온 우주의 힘을 모아 표정관리를 했다. 그럼에도 잘 못한 것 같지만 알게 뭔가. 온 우주의 힘을 겨우 그런 사람에게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썼다는 게 아까울 지경이다.
말머리와 끝마다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이상하지만, 너무 담아 듣진 마세요, 너무 새겨듣진 마세요, 제가 그냥 하는 소리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를 붙이던데 본인이 생각해도 주제넘은 말이거나 필요 없는 말이라면 입을 다물자. 그런 명언도 있지 않나
입 다물면 중간이라도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