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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11. 2021

내가 스웨덴이 좋았던 이유

새로운 가치관을 찾았다.

내가 경험한 스웨덴은 힐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용감하게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탄 이후로 나는 제대로 쉬어본 적도 스스로를 보살핀 적이 없었다. 거기에 외국인에겐 냉정한 미국의 환경에 너무 외로웠고 항상 날카로웠고 화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자각하지 못했는데 엄마에 말에 의하면 내가 자주 아팠다고 한다. 몸이 예민해져서 가리는 음식이 많아졌고 시험이나 프로젝트를 끝내면 항상 며칠씩 앓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스웨덴에 올 때 너무 두려웠다. 그 고생을 나 스스로 또 하러 가겠다니 미친 거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 두기엔 나는 천체물리가 너무 좋았다. 그렇게 겁을 잔뜩 집어먹고 간 스웨덴은 너무 행복했고 나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스웨덴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1. 효율적인 시간 활용

내가 만난 스웨덴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시간 활용을 정말 효율적으로 했다. 효율적이라고 해서 짧은 시간 동안 뭔가를 많이 한다는 게 아니라 일하고 공부하는 시간, 쉬는 시간, 운동 또는 취미 활동을 하는 시간이 분명했다.


월 단위로 본다면 일 하는 기간 휴가를 가는 기간이 분명했고 휴가 때는 절대로 업무를 보지 않았다. 이게 종종 불편할 때도 있긴 했지만 나도 그들에게 맞춰 휴가 전에 필요한 일들을 정리하고 해결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학생이라 나의 휴가가 아닌 상대의 휴가에 맞추긴 했지만).


주 단위로는 주말엔 무조건 쉬어줬다. 정말 급박한 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아무도 업무를 보지 않았고 이메일로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도 거기에 맞춰 시험기간이 아닌 이상 주말에는 글자 한 자 들여다보지 않았다. 주말에 쉰다는 게 정말 좋았던 이유는 주중에 확실히 내 일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꼭 이번 주에 끝내야 한다면 주말에 쉬기 위해서라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끝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끝내지 못한 일들을 잘 정리해서 다음 주에 돌아와서 쉽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뒀다. 그리고 주중에 내가 열심히 했던 열심히 안 했던 주말에 아무 생각 없이 쉬다 보니 한 주를 다시 시작할 에너지가 생겼고 정신적으로 환기가 되어 잘 안 풀렸던 일들도 해결할 수 있었다 (진짜 안 풀리는 일은 몇 주고 안 풀리긴 했지만).


일 단위로는 업무/공부 시간 나의 자유 시간이 분명했다. 출퇴근 시간은 사람들마다 다르긴 했지만 다들 자신만의 정해진 시간에 와서 정해진 시간에 집에 갔다. 쓸데없이 뭉그적거리거나 업무를 집에 가져가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업무/공부 시간이 끝나면 맘 편히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업무/공부를 끝내는 데드라인이 있다 보니 일하는 시간엔 일만 열심히 하게 됐고 그 이후엔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다음날을 준비했다.


2. 여유 있는 자세

스웨덴의 시스템이나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서 내가 느낀 점은 뭐든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나태하다는 말이 아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차 한 잔,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을 만들고 열심히 일하다가도 퇴근시간이 되면 다음날 마감이지 않는 한 깔끔하게 컴퓨터를 끄고 퇴근을 했다. 내가 몇 시간이고 아무 말 않고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주변에서 커피 한 잔 마시자며 분위기를 환기시켜줬다. 누구에게는 집중이 깨져서 방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나도 자각하지 못한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더 좋았다.


중요한 일, 긴장되는 일에서도 이런 여유 있는 자세는 옆에서 보기만 해도 나에게 도움이 됐다. 중요한 발표나 시험이 있을 때 긴장과 불안으로 떨고 있으면 주변에서 실수해도 괜찮고 망쳐도 괜찮다고. 이걸 망쳐도 얼마든 다시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시 말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시험의 경우 최소 점수를 맞추지 못해 떨어지더라도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몇 번이고 재시험을 치를 수 있다. 학교 시스템에서도 스웨덴의 여유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3. 수평적인 인간관계

나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교수들과 수직적인 관계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한국만큼 교수를 떠받드는 분위기도 아니고 실제로 연구 중 지도교수와 성격이 너무 안 맞아서 중간에 내가 먼저 지도교수를 바꾼 적도 있다. 하지만 스웨덴의 교수들과의 관계는 그것보다 훨씬 수평적이었다. 미국에서는 교수들이 학생들의 이메일에 일일이 답변해주지도 않고 미팅 일정을 교수가 마음대로 정하고 바꿔도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교수의 능력이 필요한 사람은 나고 교수의 커리어에 내가 큰 부분을 차치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꼭 지도교수가 아니더라도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함께 고민해주고 진심으로 답변을 해준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더라도 충분한 예의를 가지고 학생과 교수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나를 대한다. 이런 게 수평적인 관라는 것을 스웨덴에서 처음 깨달았다.


어쩌면 조금이라도 권력관계가 존재할 지도교수와의 관계도 다르지 않았다. 나의 생각들이 지도교수의 시각에선 완전히 틀린 이야기라 하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조심히 완곡하게 표현한다. "너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방향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너의 생각을 알려달라." 이런 표현들은 내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고 다음에 내 의견을 표현하는데도 훨씬 자신감이 생긴다.


이렇게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들과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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