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Oct 18. 2021

의도치 않은 미니멀리즘

어느새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나는 2012년부터 해외에 나와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에 정착하기보단 상황에 맞게 여기저기 이사를 많이 다녔다. 홈스테이 반년, 친척 집에서 1년 반, 월세 아파트에서 1년 반, 학교 아파트에서 1년, 또 다른 학교 아파트에서 다시 1년, 지인 집에서 1년, 한국에 귀국하고 1년 반, 다시 해외에서 기숙사 2년. 한 집에 2년을 넘게 살아본 적이 없다. 심지어 이사 중간중간 잠시 머물렀던 장소까지 합치면 이사 횟수는 더 늘어난다. 


이사가 잦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구역 안으로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게 꺼려졌다. 어차피 곧 이사를 갈 텐데 그때까지 이걸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이사 갈 때 가져갈 수 있을까. 번거로운 짐을 하나 늘리는데 이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등등 수많은 기준을 통과한 물건들만 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바로 미니멀리스트인 건 아니었다. 미니멀리스트가 뭔지도 몰랐고, 유학 초기에는 오히려 맥시멀리스트라 한국에 잠깐 들어올 때마다 짐을 한 아름 들고 와서 한국 집에 두고 다시 떠났다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놨었다). 내 생각에 미국에서도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었다. 물건이 한 번 들어오기 힘든 만큼 이미 들어온 물건을 버리는 것을 힘들어했다. 쓰지 않는 물건, 입지 않는 옷, 신지 않는 신발들이 한 트럭이었고 이사할 때마다 물건을 버리지만 그래도 중형차 한 대가 가득 찼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옷과 물건들을 정리했지만 커다란 박스 3개가 나왔고 기타 잡동사니를 합하면 소형차가 가득 찼다. 나름 중형차에서 소형차 정도로 짐이 줄은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시 미국에 돌아갈 줄 알았기 때문에 남은 짐들을 모두 친척집에 맡겨두고 왔고 미국에 다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되고 미국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미국행을 계획했을 때는 코로나가 터져 지금까지도 미국에 못 가고 있다. (대신 다 버려달라고 하고 싶다...) 


의식적으로 짐을 줄이자 라고 생각한 건 한국에서 다시 스웨덴으로 갈 준비를 할 때였다. 다시 해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에 우울하기도 했고, 무거운 짐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곳에서 낑낑댈 생각에 너무 진절머리가 났다. 미국에서 많지도 않은 짐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물건 하나 더 챙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욱하는 감정이 생겼고 정말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짐을 꾸렸다. 그렇게 꾸렸는데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무게를 초과했고 추가 요금을 물면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그 이후 더욱 물건을 줄이기 시작했다


스웨덴에서 옷 쇼핑, 물건 쇼핑을 한 적이 손에 꼽는다. 그나마 옷도 하나뿐인 청바지가 엉뚱한 곳이 찢어져서 더 입을 수 없게 됐을 때, 날이 추운데 따뜻한 옷 한 벌 없을 때, 오래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필요를 인정한 물건을 살 때 빼고는 거의 쇼핑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스웨덴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올  땐 큰 캐리어 하나, 작은 캐리어 하나에 모든 짐을 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도저히 들고 올 수 없는 부피가 큰 가구들은 모두 팔고 돌아왔다. 옷은 큰 캐리어 한쪽에 모두 들어갔고, 다른 물건들은 나머지 한쪽에 모두 들어갔다. 작은 캐리어에는 중요한 물건들만 담아서 자리가 여유로웠다. 


어쩌다 보니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어떤 신념과 각오를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었지만 전혀 힘들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볍다. 모든 물건들을 내가 잘 관리하고 있고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에 안정감을 느낀다. 환경을 위해서도 내 정신을 위해서도 앞으로 계속 미니멀하게 살아갈 생각이다. 그나마 있는 짐들도 요즘엔 다시 고민하고 있다. 이게 나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