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의 시작
2020 도쿄 월드컵 여자 배구 터키전에서 대한민국이 터키를 이기고 4강에 올라갔다. 그때 경기장에서 울던 터키 선수들의 뒷 이야기를 들고 사람들이 한 일은 터키에 묘목을 기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터키전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뉴스로 그 소식을 듣고 나도 저렇게 기부할 수 있다면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학생일 뿐이지만 일회성에 적은 돈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컴퓨터를 켜고 기부 방법을 설명해놓은 블로그의 글을 차근차근 읽으며 묘목 5그루를 기부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려울게 뭐가 있겠냐 싶지만 막연히 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으로 기부는 뭔가 특별하고 나와는 조금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정말 별거 아니었다. 첫 시작이 어려웠을 뿐 한 번 해보니 그다지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인터넷 쇼핑을 하듯 몇 번의 클릭과 입력으로 모두 끝났으니까. 그다지 큰 금액을 기부한 것도 아니지만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들었고 조금 더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을 생각해본 끝에 한 달에 만원 정도면 정기적으로 기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관심이 많았던 환경 단체에 기부를 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린피스에도 한 달에 만원씩 기부를 시작했다.
그다음으로 생각한 건 내 머리카락이었다. 3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은 항상 거추장스러웠고 기회만 생기면 잘라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막상 자를 결심을 하고 나니 이 머리를 그냥 버린다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냥 기장만 줄이는 정도로 자르고 싶던 게 아니라 숏컷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이 머리들이 전부 버려진다는 게 아쉽기도 했다.
예전에 얼핏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걸 들어 본 기억이 나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거기서 어머나 운동본부를 알게 됐고 머리카락을 기부할 수 있었다. 미용실에 부탁해 최대한 한 번에 머리카락을 잘랐고 상자에 담아 어머나 운동본부에 보냈다. 최소 25cm 이상의 길이여야 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40cm가 넘게 나왔다.
이제 스웨덴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고 얼마 전 헌혈의 집에 2번 다녀왔다. 헌혈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시도해보긴 했지만 번번이 부적격으로 헌혈을 해본 적이 없다. 이제는 헌혈에 무언가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하려는 게 아니라 오기가 생겨버렸다. 왜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첫 번째 도전에는 적혈구 수치와 혈압에서 투아웃을 받고 처량히 헌혈의 집을 나와야 했다. 약간의 오기로 일주일 후 다시 헌혈의 집에 방문했을 땐 걱정이 무색하게 무난히 통과를 했다. 이렇게 그냥 통과한다고? 하는 마음에 조금 얼떨떨하긴 했지만 일단 헌혈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생각보다 바늘이 아프고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게 무서웠지만 전혈은 5,6분이면 끝나서 버틸만했다. 열심히 몸 관리해서 두 달 뒤에도 무사히 헌혈을 할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내가 가장 쉽게 나눌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하다 보니 일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매달 정기 후원이 나갔다는 알림이 오고, 머리카락은 다시 기부를 위해 기르고 있다. 헌혈이 가능한 다음 날짜는 달력에 표시되어 있다. 대단하지 않은 변화지만 소소한 뿌듯함이 생기는 변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