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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Nov 15. 2021

공항 트라우마의 시작

유학생이지만 공항을 싫어한다.

나는 공항을 싫어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가야 하는 공항을 싫어한다. 친구들 배웅을 위해 공항을 가는 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비행 일정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찾아온다. 왜 불안한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심란해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특히 비행 전 날은 거의 잠도 잘 못 잔다. 내 생각엔 내가 지금껏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을 가서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지금껏 공항을 싫어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미국에 처음 가기 위한 비행이 큰 몫을 한다. 처음 해보는 유학 준비라 별의별 물건을 꽁꽁 싸서 챙겼고 몸뚱이 하나에 대형 캐리어 1 개, 대형 이민 가방 1개, 소형 캐리어 1개, 백팩 1개를 들었다. 그마저도 무게가 아슬아슬해서 무거운 외투와 워커는 직접 몸에 걸치고 비행기를 탔다. 


거기에 내가 이용했던 항공사는 악명 높은 유나이티드 항공이었다 (이후 가격 때문에 1번을 더 타고 두 번 다시 이용하지 않는다). 이때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비행기에서도 멀미를 했다. 12시간의 멀미로 힘겨운 비행 끝내고 드디어 미국 땅에 도착했을 땐 드디어 미국이다 하는 부푼 감정보단 얼른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여기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입국장을 나서니 유학원에서 픽업을 위해 나온 분들이 계셨고 홈스테이  할 집까지 이동하려는데 뭔가 몸이 너무 가벼웠다. 짐을 하나하나 싣고 있을 때 깨달았다. 가방 하나가 없다! 


생각해보니 출입국 관리소에서 무언갈 잔뜩 물어봤고 정말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던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어디론가 인도되어 모든 짐을 검사받았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챙기면서 백팩을 검사장에 놓고 왔던 것이다. 


유학원에서 나오신 분들 중 한 분이 나와 함께 남아 가방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가방은 6개월 뒤에 찾았고 안에 들어있던 현금은 아주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공항에서 지갑을 잃어버리거나(결국 못 찾았다) 엉뚱한 게이트 찾아가서 비행기 놓칠 뻔하는(다행히 비행기가 연착이 됐다)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짐을 들고 공항까지 가거나 공항에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는 공항에 가거나 집에 돌아오기 위해선 자가용이 꼭 필요했다. 처음 몇 번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혼자 움직이려 했지만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친구에게 매번 부탁하는 것도 미안하고 매번 렌트를 하는 것도 돈이 만만치 않았다. 


몇 년 동안 공항(또는 비행기)에 대해서 여러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이젠 그런 어려움이 없는 상황에서도 괜히 불안해진다. 이 불안 때문에 해외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한국에 정착해서 공항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판 내 무덤이려니 하고 다시 짐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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