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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21. 2021

천체물리 석사생이 듣는 수업 -1-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했던학점 시스템

스웨덴 룬드에서 천체물리학 석사 과정 첫 학기에는 들을 수업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수업 등록도 모두 자동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시스템은 처음 해외로 학교에 갈 때 신경 쓸게 확 줄어들어 너무 편했다. 그래서 스웨덴 말고 다른 학교에 합격했을 때 스웨덴 룬드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룬드에서는 한 학기가 2 periods로 나눠져 있었는데 첫 학기에는 각 period에서 2과목씩 들었고 나머지 학기에는 1과목씩만 들었다. 

스웨덴 룬드 대학 천문학과 2년 과정 프로그램의 스케줄. 첫 학기가 이미 짜여 있는 게 너무 좋았다.


Course 1: Stellar Structure and Evolution

첫 학기의 첫 period에는 별(Stellar Structure and Evolution)과 은하(Extragalactic Astronomy)에 관련한 수업을 들었다. 특히, 별에 관한 수업은 학부 때도 들었던 수업이고 같은 교재를 사용하기에 만만하게 보고 들어갔는데 나올 땐 완전히 깨져서 기어 나왔다. 내가 학부 때 대충 공부한 건지 석사 레벨의 수업이라 어려웠던 건지 모르겠지만 만만히 보다 큰 코 다쳤다. 이 수업에서는 3번의 그룹 활동이 있고 1번의 기말고사가 있었다. 그룹 활동 동안에는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문제를 교제만 가지고 해결하는 활동이었는데 주어진 3시간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물미역이 되어 교실을 빠져나왔었다. 기말고사도 5시간 동안 시험을 보는데 5시간을 모두 쓰고도 문제를 다 못 풀었었다. 내가 지금껏 들었던 수업들 중에서 두 번째로 가장 어렵고 힘든 수업이었다 (첫 번째는 미국에서 학부 때 들었던 관측 수업이다). 

Stellar Structure and Evolution 수업에서 했던 노트 필기. 이 수업은 노트 필기가 정말 많았다. 이 수업 외에 이만큼 필기한 수업은 없었던 거 같다. 


Course 2: Extragalactic Astronomy 

별과 같이 들었던 은하에 관한 수업은 크게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시험이 어려웠다. 너무 어려워서 중간고사 때는 학생들이 항의 이메일도 보냈고 다 같이 모여서 교수가 힌트를 주며 난이도 조절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냥 아 망했다 기말을 노려야 하나 이러고 있었는데 다른 학생들이 대신 나서 주어 정말 다행이었다. 거기다 1주일 동안 다른 학생들과 상의하고 인터넷이나 교제 등을 사용해서 풀고 제출하는 방식이어서 어떨 땐 친구 등에 업히고 어떨 땐 내가 엎어주고 하면서 겨우겨우 중간고사를 제출했다. 기말고사는 5시간이 주어졌는데 4시간을 쓰고 더 이상은 도저히 아는 게 없어서 그냥 제출하고 나와버렸다. 


룬드 천체물리학과의 특이한 학점제

첫 학기 첫 period의 수업 두 개를 모두 거의 망치듯 끝냈지만 난 전혀 불안하거나 불행하지 않았다. 포기해서가 아니라 우리 학과의 독특한 학점 시스템 때문이었다. 우리 학과에는 A, B, C, D가 아닌 3개의 점수만 존재했는데 No Pass, Pass, Pass with Distinction 이렇게 3개뿐이었다. 기말고사 점수와 중간 과제 점수들을 모두 합쳐서 50%를 못 넘으면 No Pass, 넘으면 Pass, 75%를 넘으면 pass with Distinction이었다. 결국 내가 50%를 받든 74%를 받든 결국 똑같은 점수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75% 이상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고 그러면 50%만 넘으면 된다는 건데 아무리 망해도 그건 넘을 것 같았다. (은하 수업을 50.6%으로 패스할 줄은 몰랐지만 아슬아슬해도 패스는 패스다.)

이 시스템의 좋은 점은 사소한 1,2%의 점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1,2%는 물론 25%는 티가 나지 않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시험이나 과제에 목매지 않아도 됐었다. 어느 정도 과제와 시험공부를 하고 나서는 내가 더 자세히 공부하고 싶은 부분,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내가 시간을 더 들여서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들에 더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시험이 끝나도 수업 내용들이 머리에 남아있는 기적을 경험했고 수업을 듣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하게 됐다. 수업이 즐겁다니... 대학 입학 첫 학기에 느껴보고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물론 다른 학과들은 다른 학점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이 시스템이 모든 학과에 적용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천체물리학과에서 연구원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는 석사생에게는 최고의 시스템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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