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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아빠 Jul 11. 2024

러닝을 시작한 이유

육아아빠의 풀코스 마라톤 도전기 01

1km 이상을 쉬지 않고 달린 적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었을까?


일단 성인이 되기 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성인이 된 후로는, 

몸매 관리에 열심이었던 대학시절의 몇 달과 (그리 오래가진 않았던 것 같다) 체력단련으로 아침마다 구보를 뛰어야 했던 군대시절, 그리고 20대 후반에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직장생활을 했던 때의 또 몇 달이 기억난다. (이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이렇게 되짚어보니 지나온 삶의 챕터, 챕터에서 꽤 여러 번 달리기를 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20대 후반을 마지막으로 나는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뭐 그렇게 큰 애착이나 의미를 갖고 달렸던 것도 아니어서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한 번도 달리기라고 답했던 적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30대 중반이 되었고 달리기는커녕 일정 거리 이상을 걷지도 않는 도시인의 삶을 살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는 새 몸은 꾸준히 불어 핏한 정장 바지보다는 허리에 밴딩 처리가 된 골프바지 따위를 더 선호하는 아저씨의 체형을 갖게 되었다. 


그런 내가 러닝을 시작한 건 둘째 아이의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던 2023년 12월 말이었다. 그때 나는 10개월째 '육아아빠'의 삶을 살고 있었다. 2023년 3월에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퇴사를 했고 (일종의 육아휴직을 쓴 셈이고 이 글을 쓰는 2024년 7월에도 여전히 육아휴직 중이다) 퇴사 후 얼마되지 않아 둘째 아이가 찾아왔던 것이다.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게 생각처럼 마냥 행복한 건 아니었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데는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고 내 아이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는 날이 많았다. 무엇보다 '내 일', '내 삶'이 없어진 데서 오는 일상의 무료함과 답답함이 커졌고, 소속이 없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이 시간을 잘 마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갔을 때 내 자리가 있을까 하는 무기력한 마음도 한 번씩 들었었다.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육아의 최전선을 살고 있을 때가 바로 2023년 말이었다. 조산기가 있던 아내는 11월 중순부터 친정에 가서 출산준비를 했고 나는 30개월 된 첫 째 아이를 혼자 돌보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낮에는 그나마 어린이집에 가는데 밤만 되면 엄마 품이 그리워 잠을 설치고 소리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이를 데리고 고향 부모님 댁에 며칠씩 오가며 조금이나마 육아의 짐을 덜기도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밤에 혼자 밤공기라도 쐬려고 부모님께 아이를 잠시 맡기고 밖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와 동네 공원 등지를 걷다가 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또 한참을 걸었었다. 산길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어두웠지만 무릎 높이의 조명이 길 따라 쭉 설치되어 있어서 적당히 아늑한 느낌이 드는 코스였다.


답답한 마음 때문인지 왠지 달리고 싶어 져서 걸음에 조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겨울밤의 상쾌한 공기가 코를 타고 내 몸을 관통했고 숨이 가빠지면서 그 차가움을 폐로 온전히 느꼈다. 비니와 장갑을 끼고 나온 덕분에 손끝이나 귀가 많이 시리진 않았지만 밖으로 드러난 얼굴은 금세 시려왔다. 달리기를 지속하며 패딩 안으로 열이 오르자 추위가 사그라들었고 곧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온전한 감각이었는지... 잠들었던 몸이 깨어나고 육아의 연속으로 무기력하게 움츠렸던 '나'의 자아가 활기를 되찾는 느낌마저 들었다. 


"OO아, 할 수 있다!" 


그날 밤, 나는 거의 십 년 만에 달리기를 하며 이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육아의 연속으로 지쳐버렸던 나,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을 멈춘 데서 오는 무기력함과 불안 (내가 선택한 길임에도), 그리고 곧 태어날 둘째 아이를 생각하며 가졌던 막연한 부담과 무게... 내 안에 쌓였던 그런 것들에게 선언하듯 '할 수 있다'는 말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빠로 멋지게 해낼 거라고 다짐했고 또 기도했다. 


그날부터 러닝은 내 일상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적어도 30분 이상은 꼭 달리고 있고 한 달에 적게는 70km, 많게는 120km 정도를 뛴다. 육아로 채워진 일상은 여전히 나를 지치게 할 때가 있지만 그럴수록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서 달린다. 그러면 몸에 활기가 돌고 십중팔구 정신도 함께 맑아지기 때문에 이젠 안 달리려야 안 달릴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꾸준히 러닝을 한 지 이제 겨우 6개월이 지났지만 그새 체중은 7kg 이상 빠졌고 내가 봐도 꽤 튼튼한 다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3월과 5월에는 10km 마라톤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즐거움에 빠져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거리를 달리는 꿈을 꾸고 있다. 


얼마 전, 나는 2024 춘천마라톤 풀코스 참가신청을 했다. 나 스스로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완주 가능성이 5%도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3대 마라톤이자 내 고향 강원도에서 열리는 춘천마라톤에서 인생 첫 풀코스를 달려보고 싶었다. 하프 마라톤이 있었다면 하프를 신청했을 텐데 10km 아니면 풀코스 밖에 없어서 '그래, 기어서라도 들어가 보자' 하는 마음으로 신청을 했다. 


이것저것 찾아보니 풀코스 마라톤을 앞두고 16주 동안 진행하는 훈련 프로그램이 있었다. 4달여 동안 풀코스 완주를 위해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거 따라 하면 그래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올라가지 않을까?' 싶어서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2024 춘천마라톤은 10월 27일, 이를 기준으로 16주를 계산하면 7월 8일 월요일에 훈련이 시작된다. 바로 이번주다.


앞으로 16주 동안 풀코스 마라톤 준비 과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달리기를 하면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훈련 중에 드는 생각들과 거기 담긴 나의 이야기도 함께 적어볼 생각이다. 


이제 겨우 6개월 달린 초보 러너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37살 육아아빠가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

솔직히 엄두도 안 나지만 (오늘 6분 50초 페이스로 6.4km의 숲길을 달리며 나의 현재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혹시나 완주하게 된다면 말도 못 하게 행복할 것 같다. 그 순간을 꿈꾸며 착실하게 준비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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