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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아빠 Aug 01. 2024

멋모르고 달리다가 쓰러질뻔한 날 (ft. 여름 러닝)

육아아빠의 풀코스 마라톤 도전기 03

제주의 여름 날씨를 쉽게 봤다가 큰코다쳤다.


여름이 오기 전에는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러닝을 할 수 있었다. 비교적 동이 늦게 텄기 때문에 6시에만 나가도 (결코 빠른 시간이 아니지만) 새벽 특유의 상쾌함을 느끼며 달릴 수 있었다. 


요즘은 한밤에도 27도를 가볍게 넘기니 시원한 공기를 기대하기는 힘들어졌다. 더구나 5시 조금 넘으면 해가 떠서 금세 30도 이상으로 지면을 덥히니 한 시간 정도를 여유롭게 달리는 기회가 사실상 없어졌다.


처음에는 피트니스 센터를 찾아서 러닝머신을 이용하기도 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것만으로 충분한 메리트가 있었지만 다양한 장소와 지면을 경험하며 달리는 아웃도어 러닝에는 비할 바가 못됐다. 어쨌든 마라톤은 야외에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훈련이 못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두세 번 러닝머신을 경험한 이후 다시 야외로 눈을 돌렸다. 한낮의 뜨거운 날씨의 영향을 최대한 적게 받는 곳들을 주로 찾았는데 대표적으로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사려니숲길이 있다. 높게 솟은 나무들 사이를 달리니 대부분의 주로가 그늘이고, 산길이기 때문에 언덕, 흙, 바위 등 다양한 지형을 경험하기에 좋다. 게다가 데크길도 잘 되어 있어서 평지에서 달리는 연습도 충분히 된다.


또 하나는 바닷가. 숲길과 다르게 구름 한 점 없지만 달리기 직후 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열기를 식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시원한 바닷물로 씻고 바다 수영도 즐길 수 있어서 최근 몇 차례 조함해안로에서 (조천리와 함덕리를 잇는 해안도로) 러닝을 했다. 조함해안로에는 스노클링 명소로 알려진 작은 해안가가 있는데, 거기에 차를 세워두고 해안도로를 달리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해수욕장,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며 달릴 수 있어서 중산간 러닝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리고 러닝 후에는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는 캠핑의자와 스노클링 장비를 꺼내 여름 바다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한여름 바닷가의 땡볕 아래서 달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나는 여실히 느꼈다.


34도가 넘는 뜨거운 날이었다. 이전이라면 그런 날에는 절대 달릴 생각을 안 했겠지만 꾸준히 달리며 맞은 여름이라 그런지 천천히 달리면 큰 영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같은 길을 같은 시간대에 이미 여러 번 달려봤기 때문에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있었다. 그렇게 조함해안로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함덕해수욕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늘이라곤 없는 뜨거운 날, 드라이기를 틀어놓은 듯한 뜨겁고 습한 공기가 계속해서 입과 코를 지났다. 7분 30초 정도의 페이스로 가볍게 달리려고 했지만 1km도 채 되지 않아 얼굴과 상체가 '익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쉭-"하고 달아오르는 전자레인지 속 감자처럼 푹. 그럼에도 호흡을 깊게 유지하고 보폭을 작고 가볍게 하려고 노력했다. 시야엔 새파란 하늘과 바다, 물놀이하는 사람들... 얼른 러닝을 마치고 바다에 들어가야지 생각하며 함덕해수욕장에 다다랐고, 잠시 쉴 생각에 건물 옆의 그늘로 들어갔다.


달리는 걸 멈추니 과호흡이 오기 시작했다. 얼굴이 너무 뜨겁고 눈이 핑 돌아 어지러웠다. 크게 호흡하며 십여 분, 그래도 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거기까지 달린 거리는 고작 1.8km 남짓... 20분도 달리지 않았는데 그렇게 큰 데미지를 느낀 건 처음이었다. 숨을 좀 돌린 이후에 '차를 세워둔 곳까지만 얼른 돌아가자' 하고 다시 살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3분이나 되었을까, 자석처럼 다시 횟집의 그늘로 들어갔는데 그때는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은 생각에 얼른 벤치에 앉았다. 머리가 핑 돌고 뭔가 오줌이 나올 것 같은, 힘이 더 빠지면 제어가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시야나 생각이 흐려져 다 통제가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폭염이 얼마나 무서운지 여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거기서부터는 살살 걸어서 차까지 되돌아왔다. 중간중간 그늘에 앉아 쉬었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바다에 들어가 뜨거운 몸을 식히고 정자 그늘에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서 두어 시간을 쉬었다. 크게 긴장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처럼 얼굴이 달뜨고 심장이 계속 빠르게 뛰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괜히 그런 느낌이 든다. 


10월 말에 있을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려다 보니 이 뜨거운 계절에도 달리기를 놓을 수가 없다. 달리는 것 자체가 좋은 것도 있지만 (그리고 달리기가 주는 일상의 활력을 놓칠 수가 없는 것도 크지만) 목표를 정했기 때문에 그에 맞춰 훈련을 하려다 무리를 해버렸다. 


역시 러닝머신을 달리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겠지 싶으면서도 가능한 '달리는 즐거움'을 십분 느끼게 해 준 야외 러닝을 놓치지 않고 싶은 욕심이 든다.


풀코스 달릴 수 있을까... 하루 한 시간도 충분히 달릴 수 없는 요즘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방법을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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