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시티에서 4일을 머무른다. 나는 여행을 준비할 때 일단 가고픈 곳들의 위치를 구글맵으로 확인하고 구역 별로 일정을 나누는 편인데 멕시코 시티는 크게 세 군데로 나누었다.
- Reforma 거리 주변의 도심 명소들 (독립기념비, 국립 인류학 박물관, 궁전, 대성당 등)
- 프리다 칼로 박물관이 있는 도시 남부지역, Coyoacán
- 도시 북동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고대유적, Teotihuacán
오늘은 비교적 멀리 가야하는 북동쪽의 고대도시, 테오티우아칸 (Teotihuacán) 에 가기로 했다.
테오티우아칸 (Teotihuacán) 에 가려면 도심 북쪽에 있는 '북 버스 터미널' (Terminal Central de Autobuses del Norte) 에서 버스를 타야한다. 터미널까지는 메트로 3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지만 긴 하루를 예감했기에 과감히 Uber를 이용했다. ( Uber는 미국에서도 참 유용하게 썼는데 멕시코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현지 유심을 구매했기 때문에 이용에 불편함이 없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나는 잠시 당황했다. 표를 구매하는 창구가 하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널찍한 터미널에는 각종 여행사와 운수회사가 운영하는 카운터가 쭈욱 들어서 있었다. 테오티우아칸 (Teotihuacán) 행 버스는 안쪽에서 두번째 카운터 (게이트 8번 근처, 피라미드 모양의 간판이 있음) 에서 구매할 수 있다. 요금은 왕복 100페소,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버스를 타려는 사람이 많았다.
멕시코에서 처음 타보는 버스라 혹시나 잘못탈까봐 재차 확인하고 물어서 버스에 올랐다. 한 시간 가량 달리는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도심을 벗어난 버스가 외곽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 곧 이국적으로 보이는 언덕마을과 (혹은 달동네) 널찍한 들판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그렇게 도착한 테오티우아칸 (Teotihuacán)의 첫인상은 크고 '웅장했다'.
이 웅장한 고대도시에는 기원전 200년 경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거대한 유적으로는 '태양의 신전' 피라미드와 '달의 신전' 피라미드, 그리고 Templo de Quezalcoatl이 있다. 테오티우아칸 (Teotihuacán)을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달의 신전'은 가장 왼쪽, '태양의 신전'은 가운데, Templo de Quezalcoatl는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유적들 사이에는 고대도시의 집과 각종 건물들이 있었을 터가 남아있다. ('태양의 신전'은 서기 100년에 지어졌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라고 한다.)
테오티우아칸 (Teotihuacán) 은 웅장했고, 넓었고, 높았다. 뜨거운 날씨 때문에 입구에서 산 큰 물병이 금방 가벼워졌고 너무 넓어서 금세 다리가 아파왔다. 그러다 보면 슬슬 드는 생각, '아 그냥 올라가지 말고 밑에서만 볼까?' 사실 두 신전 중 하나만 오르려고도 했는데 첫 번째로 오른 '태양의 신전'에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다 다르게 보인다. 점차 가까워 오는 모습,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모습, 계단을 오르며 행여 넘어질까 유일하게 보게 되는 발 치, 중턱에서 보이는 모습, 꼭대기에서 보이는 모습, 또 내려가면서 돌아보는 모습까지 다 다르다. 하물며 나 한 사람이 봐도 이렇게 다른데 거기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까지 더하면 얼마나 많은 모습을 갖고 있는걸까? 예수님의 탄생 전부터 존재했던 도시는 오늘도 셀 수없이 다른 모습으로 거기 있었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여류 예술가 프리다 칼로. 멕시코의 전통 문화와 현실주의, 초현실주의를 결합한 원시적이고 화려한 화풍으로 알려진 그녀는 6살에 소아마비, 16살에는 교통사고로 수십번의 수술을 받아야했고, 남편의 여성편력과 사고에서 비롯된 3번의 유산, 불임 등 온갖 불행의 주인공이었다. 삶 속에서 반복된 절망은 그녀에게 오브제가 되었고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 중에는 자화상이 많다.
멕시코 시티에는 그녀가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보전한 Museo Frida Kahlo가 있다. 이번 방문을 통해서 왜 그녀가 지금까지 많은 멕시코인들의 사랑을 받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일자눈썹 엘리트 누님인줄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고된 삶을 살았던 프리다 칼로. 그러고 보면 삶의 아픔을 얘기하는 예술작품에서 더 많은 울림을 접하는 것 같다. 이별노래가 더 와닿는 것처럼 누구나 이해받고 싶은 아픔이 있어서겠지? 갤러리부터 정원까지, 편안했던 멕시코 시티 파란집.
고통, 기쁨, 죽음은 존재를 위한 과정일 뿐. 이 과정의 혁명적 투쟁이야말로 지성을 향해 열린 문이다
프리다 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