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감사하고 만끽해야지
모처럼 날이 갰다. 요며칠 계속된 비로 꿉꿉한 날씨는 물론 비를 피해 집으로 들어오는 중산간 전원주택의 각종 벌레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만난 탓에 크고 작은 스트레스들이 차오르던 때에 드디어 해가 든 것이다. 제주에 온 지 이제 곧 한 달. 그간 참 많은 변화와 진행사항들로 나와 아내, 어쩌면 소망이까지 마음 바쁜 적응기를 갖고 있다.
제일 좋은 변화는 역시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 소망이를 데리고 산으로 바다로 다닐 때면 굽이굽이 마주치는 오름이며 파랗게 선명한 하늘이며 멀리 반짝이는 바다가 새삼 그렇게 아름답다. 노트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고개가 아파 잠시 목을 쭉 펴고 앞을 보는 찰나에 꿩 한 마리가 시야에 들어오니,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이라고 해도 좋을 곳에서 살고 있다.
그 덕분인지 소망이는 한층 더 밝고 활달해졌고 팔다리 얼굴이 까맣게 익어가고 있다.
소망이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듣노라면 이 시간을 갖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보람과 안도를 느낀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아마 나와 아내 모두 전원생활이 주는 그 평화로운 단조로움을 느껴왔을 것이다. 도시의 지인들과 친구들은 이 시간에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텐데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현실감 없는 이 풍경과 평화로움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물론 바로 그 점이 제주의 삶을 꿈꿨던 이유 중 하나였다. 몇 년 전엔가 한참 바쁘게 일하던 때에 아내의 태교 여행 차 왔던 제주에서 나는 오름들 사이 들판에 누워 잠시나마 그 공기와 바람, 자연의 소리 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을 만끽했었다. 그 때도 여기가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과 같은 세상이 맞나 싶은 생각을 했더랬다.)
올 초,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특히 아이와) 보내기 시작하면서 줄곧 들어왔던 생각; 사람은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크게 감사하지 못하고 다른 선택지에서 주어졌을 것들을 자꾸만 떠올리고 아쉬워하게 된다. 그러니 단조로울 만큼의 여유와 '내일은 소망이랑 또 어디를 가지.'하고 고민할 만큼 매일 함께하는 아이와의 시간, 그리고 이 자연과 평화로움이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틀어서라도 얻고자 하는 큰 가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지금을 감사하고 만끽해야지.
2023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