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째 주에 내가 할 이별을 소개합니다.
어학사전에 의하면 '미련'이란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
혹은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릴 정도로 매우 어리석고 둔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의 저는 싫증도 잘 내고 무엇이든 미련 없이 잘 버리는 사람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누구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도 싫었고 누군가의 의견에 휘둘리는 것은 더더욱 싫었어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더 싫어하면 되는 것이니 상처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싫은 건 하지 않으면 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만 하기에도 바빴습니다.
미디어 속에서 감정에 휩싸여서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지 못하는
울보들을 목격할 때면 화가 났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특히, 내가 싫다는 사람한테 목을 매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보면 더더욱 싫었습니다.
한 순간의 감정에 지배되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귀한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모습에 제가 괜시리 아쉽고 아까웠던 듯 합니다.
너나 잘해!
항상 콧대가 높았던 저는 '자존감'이라는 명목 하에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고 싫어했습니다.
MZ 마인드랄까요, 떳떳한 행동만 하기 대문에 당당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조언이나 충고에 속으로는 '너나 잘해!'라며 함부로 비웃고는 했습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이상적이게 돌아가지도 않았고,
항상 부족한 시간은 아직 어리고 멍청한 나를 기다려 줄만큼 관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공주처럼 살아가기에는, 저는 능력도 여유도 부족했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을 사실 없는 것 같습니다.
무지에서 오는 은은한 용기와 근거없는 자신감에는 사실 힘이 있습니다. 또 무엇이든 하게 해주고요.
저의 오만은 미성숙과 무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쉽게 평가하면서 저의 잣대를 들이밀었습니다.
점점 더 사회의 이면을 보고 겪으면서 저는 소위 말하는 '미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힘들게 얻은 무언가가 점점 더 너무 소중하고 귀해져서 함부로 버릴 수 없었습니다.
나의 부족함과 직면하면서 내가 가진 그 무엇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기회도, 그런 사람도, 그런 일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새로움을 향한 도전에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도 충분히 벅찼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할 여유와 용기는 도저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미련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저의 대가에 대한 진정성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서
힘들고 바쁜 와중에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해서 얻은 산출물에 대한 열정과 희망.
그만큼 진심을 다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정리되고 잊혀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과거의 단짝 친구, 나의 방패막이 되어주던 부모, 평생 내 편이라 말하던 전연인들....
무언가를 계속 잃어왔던 경험 역시 누적되면서 조그마한 것 하나도 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어차피 넌 변했지.
니체의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사상은
그의 철학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심오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 순간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그것을 긍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삶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근본적인 긍정 여부를 시험합니다.
삶이 단 한 번뿐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손쉽게 후회하거나 도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진정한 삶의 긍정과 책임이 요구됩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또 다른 개념과 연결됩니다.
반복되는 운명을 거부가 아니라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삶을 긍정한 것이 됩니다.
영원회귀를 받아들이고 찬미할 수 있는 존재.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운명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인간상으로서
'초인'의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죠.
니체는 이 개념으로 가치 있는 삶은 반복해도 좋을 만큼의 삶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진정한 삶의 긍정은 자기 존재 전체를 긍정하는 것입니다. 과거뿐 아니라 고통, 실수, 불완전함까지도.
“네가 지금 사는 이 삶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면, 너는 그것을 반복하겠는가?”
아마도 저의 미련은 실수와 후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미래의 내가 지금 사는 이 삶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부족해서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나의 삶에 대해 부정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에 여유를 가지고 저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법 역시 배워야 겠습니다.
이번주는 니체가 제시한 궁긍적 인간상인 초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책임감 있고 건전한 삶에 조인(?)은 할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하나씩 차곡차곡 버리는 연습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지 않아.
여기에 있었던 나와 너의 추억.
나의 삶, 나의 운명은 계속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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