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글] 7월 셋째 주 이별 <부정>

7월 셋째 주에 내가 할 이별을 소개합니다.

by 이 오늘내일

7월 셋째 주에 내가 할 이별을 소개합니다.


이번주는 부정(否定) 그 자체와 이별하는 시간을 가져려고 합니다.

매일매일 눈을 뜨고 나의 현실에 감사하면서, 사소한 것에도 만족을 느낄 줄 아는 삶.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나의 현실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건강한 멘탈을 소유한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현실을 녹록치가 않았고 적으로 둘러싸인 경쟁 사회 속에서,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무일한 방법은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기.

괜한 기대감으로 부풀어서 나중에 실망하지 말고 처음부터 포기하기.


현실주의적 통찰을 기반으로 '나'의 이익만 생각하며 양심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주의는 일반적으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나 사조를 일컫습니다.

문학, 예술, 철학,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각각 다르게 사용되지만,

우리의 사고에서 이상과 관념을 제거하다 보니 물리적 힘이나 경제적 권력을 중심으로

이성적이면서도 다소 비판적이게, 조금은 시니컬하게 사회적 이면을 들여다 보게 합니다.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우리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영원한 것은 오직 우리의 이익이다.”)

- 헨리 템플, 팔머스턴 경 (Lord Palmerston, 19세기 영국 총리)


정치학적 관점에서 현실주의는 국제정치를 도덕이나 이상이 아닌, 힘과 이익의 투쟁으로 간주합니다.

국가는 선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생존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이기적인 행위자입니다.

세계적 무정부 상태에서 도덕은 '사치'일 뿐이며, 도덕적 선택 역시 개인적 이익 추구의 결과에 불과합니다.

협력보다는 경쟁, 평화보다는 갈등 가능성을 기본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회가 가진 힘의 논리와 구조적 경쟁을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입니다.


한국이라는 국가에서는 사회가 규정한 나름의 관문과 과정이 명확해 보입니다.

대학 입시 이후에도 취업이나 결혼, 자녀양육, 노후준비 등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각종 미션들 때문에

불안정함과 불확실함을 학습하는 것이 일종의 '사회화'로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mobile-phone-1875813_1280.jpg




최근에 저희 회사에는 신입직원들이 대거 입사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MZ직원들의 반항과 도전이 회사 분위기를 환기한다는 생각해서 긍정적인 이벤트라고 봅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조금은 실수하고 조금은 용서해주는 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는 신입사원 A의 옷차림이 학생 같다고 직장경험이 부족하다고 떠들고

누구는 신입사원 B의 말투가 상도덕에 어긋나다며 기분이 나쁘다는데,

블라인드는 쉬지를 않고 삼삼오오가 붙어모여 누구 하나를 계속해서 욕하는 심보가 참 듣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직접 이야기를 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찾던가.

나보다 '약자'인 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함부로 곁눈질하는 태도는 역시나 수용하기 힘이 듭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 '사람 볼 줄 모르는',

아직 미숙한 대리라는 사회적 평가가 역으로 저에게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실 어쩔 수 없는 영역이긴 해요.

집보다 오래 있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나의 공간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이방인에게 적대감을 갖는 것은 동물의 기본적인 본능이자 생존방식이기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한 무리짓기와 구분짓기가 '나'를 지키는 데에 가장 유용하고 편리한 도구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도 타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직 4년차에 접어들면서 점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업무나 과제가 주어지면 도전적으로 돌파구를 찾던 과거가 기억에 잘 나지 않아요.

그 원인에, 부정적인 사고가 내면화 된 어리석음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저 스스로나 타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편향을 자초하기도 하니까요.


Robert_Merton_(1965).jpg 로버트 킹 머턴(Robert King Merton). 준거 집단과 롤 모델, 자기실현적 예언과 같은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나무위키


실망을 하기 싫어서, 기대도 하고 싶지 않아.

사실 가보지 않은 길이면 그 끝을 알 수도 없는 것인데 계속해서 상상하고 갉아먹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은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생각이나 말이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믿음 → 행동 → 결과'의 연쇄작용으로서 처음의 믿음이 옳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그 행동이 기존의 믿음에 부합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식과 사고 방식이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에 있다는 것이죠.

피그말리온 효과와 고렘 효과 역시 사람의 기대가 타인의 행동과 성과에 실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부정적인 방향으로의 자기실현을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가끔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속임수를 당하더라도

조금은 밝고 희망차게 생각하는 훈련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무조건 부정하거나 비판부터 하면서 스스로의 사기를 꺾는 것도 저의 한계를 규정하는 방식일 수 있어요.

그래서 이번주는 저의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에서 벗어나

아침 출근길을 함께하는 꽃내음도 맡아보고 점심 커피로 충전하는 카페인도 즐기면서

저의 일상을 감사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여보는 한 주를 보내보고자 합니다.


KakaoTalk_20250708_154039227_01.jpg


.

.

.



7월 셋째 주, 당신은 무엇과 이별하겠습니까?

keyword
이전 04화[네 번째 글] 7월 둘째 주 이별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