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째 주에 내가 한 이별을 소개합니다.
지난주는 자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하는 마음,
'자기연민(self-compassion)'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완벽주의를 고집하던 저는 유난히도 스스로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는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실수에는 관대했지만 저의 조그마한 실수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책했어요.
"왜 이 작은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거야?"
일종의 자기비하는 제가 이루어내고 싶었던 성과와 결과에는 좋은 자양분이 되었으나
저의 마음이나 정신적 성장에는 그다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비하는 나 자신을 할퀴고 상처내는 어리석은 행위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나를 상처주고 욕하는 '그들'은 잘만 먹고 잘사는데 나 혼자만 괴로울 필요는 더더욱 없었죠.
어찌보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양심과 도덕성이 나를 옥죄는 쇠사슬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조금은 벅찬 경쟁 속에서 나의 행동을 격려하고 존중해주는 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나를 제일 잘 아는 '나'일 수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자기연민은 심리학적으로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고통에 대해 따뜻하고 이해심 있는 태도로 대하는 것.
무수한 위협 속에서 안정적인 자기존중을 바탕으로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합니다.
본인에게 친절해지면서 타인에게도 관대함을 베풀게 되니 관계개선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죠.
나의 감정과 불안을 내가 먼저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련의 과정은 현대인의 정서적 회복에 필수적일 겁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2018년, 방탄소년단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 한국 가수 최초로 유엔총회 무대에 올랐습니다.
리더 RM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잃게 됐던 자신의 유년기 시절에 대해 고백하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Today, I am who I am, with all of my faults and my mistakes.
Tomorrow, I might be a tiny bit wiser, and that would be me, too.
These faults and mistakes are what I am, making up the brightest stars in the constellation of my life.
I have come to love myself for who I am, for who I was, and for who I hope to become.
- 유엔총회 연설문 중에서 -
지난날의 실수와 함께 나는 지금의 나를 이뤘고 앞으로 더 나아질 나도 마찬가지로 '나'라는,
자기 수용과 인정, 그리고 긍정의 메시지는 세계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Love Myself, 진정한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강조했죠.
나 조차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과연 그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의 결점을 사랑한다는 건 그 주체인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합니다.
잠들기 전 가끔은 지난 날의 과오가 떠올라 이불을 팡팡 차기도 하고 수치심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해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의 거울이자, 그 자체로도 '나'를 대변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치열한 현대사회 속 각 개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자기연민'이 현대의 주요한 심리학적 키워드로 떠오르게 됩니다.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기연민은 성과·능력 중심 사회의 비생산적인 감정으로 여겨집니다.
우울, 무기력,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기연민에 ‘머무른다’는 비난의 어조로 사용되기도 해요.
'나약한 자기합리화'라는 오명 속에서 우리사회에서 도태될 사회부적응자의 취급을 받는 듯 합니다.
즉, 자기연민을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에 취해 현실을 회피하는 상태로 오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죠.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자기연민은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보며, 성장하고 회복하려는 태도입니다.
문제는 연민의 정도에 있으며, 자기연민이 지나치면 '자기동정'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부정적인 시선은 자기연민과 자기동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합니다.
자기연민(self-compassion과 자기동정(self-pity)은 비슷해 보이지만 주체성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연민이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책임감 있게 반응하는 건강한 태도임에 반해,
자기동정은 고통에 빠져 피해의식에 갇히고, 현실을 과장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타인에 대한 원망으로 성장과 회복의 의지가 결여된 다소 수동적인 관점을 취합니다.
고통은 모두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만의 비극인 것처럼 상황을 극화하여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에 압도되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다소 위험합니다.
왜 다들 나한테만 그래?
그리고 부끄럽게도 나를 탓할 자신이 없어서 세상 탓만 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일이 다 억울하죠. 뭐 나한테만 굳이 그렇게 거칠고 차갑고 그럴까요.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든 사회인데 유난히도 요즘 더 힘들어하고 더 아파하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면 여러 겹의 상처 속에서 새살이 돋아나 작은 상처 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누적된 고통과 반복된 경험을 기반으로 사소한 일에는 에너지 낭비 없이 척척 잘 해결해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무슨,
상처는 회복될 줄을 모르고
그저 시간이 지나기를 인고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고들 하더이다.
무섭고 힘들어도 시간은 지나가니까 그냥 견딘다는 생각으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버티는 거죠.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보상심리가 발동하면서 또 나 스스로가 그렇게 안타깝고 가엾습니다.
작고 큰 싸움과 경쟁을 거쳐 이제는 나름 어엿한 사회인으로 잘 성장했다고 자평했던 것 같습니다.
잘하지는 못해도 부족하지는 않게 공부하고 배우면서 지성인끼리 그렇게 개처럼 싸울 일이 뭐 있냐는 거죠.
그런데 나이를 먹었다고, 조금 더 배웠다고 해서 '성장'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합니다.
최근 가장 친했던 누군가와 일종의 손절을 하게 되면서 태어나서 가장 아픈 14일을 경험했습니다.
서로 욕하고 물어뜯는 건 사실 아프지 않았어요. 사람 간의 행위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듯 합니다.
다만, 상황의 맥락은 제거한 채 상처가 된 파편들을 억지로 긁어 모아서
있지도 않은 '가상'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서로의 모습이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진심도 아닌 말을 상처를 주기 위한 무기로 휘두르고 자신의 피해만 주장하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 무지성으로 거짓을 말하고 다 저의 탓으로 몰고 가더이다.
성인, 아니 사람이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는데 아무런 죄의식도 미안함도 느끼지 못하더라고요.
너가 하는 건 가스라이팅, 내가 하는 건 정당방위.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욕하는 본인은 되돌아 보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만 상처 입었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왜곡',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상대의 언행은 사실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친구와의 손절과는 무관한 과거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가지고 와서 억지로 공격하는 것도,
모든 상황과 맥락을 제거하고 나의 말 속 어느 작은 빈틈을 가져와 거짓된 상상을 하는 것도,
자신의 실수는 받아들이지 못한 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의 불공정한 관계를 만드는 것도,
제가 이해할 필요가 없는, 온전한 '남'의 감정이었습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나는 마는 것이고 상대가 지옥에 빠져 살겠다면 그저 지나가는 것이 맞았습니다.
시간 지나면 알아서 후회하고 말겠거니 넘어가고 포기할 순간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그리고 고민 끝에 나도, 그도 지나친 자기연민 - '자기동정'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너무 아플고 힘들다는 이유로 감정의 파도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둘 다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죠.
자기동정은 '나'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해석하고 평가하도록 부추기면서 나만큼 아픈 상대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나는 내가 아닌 그에게 미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결핍에 결핍으로 응수한 것, 그의 공격에 공격으로 방어한 것, 때로는 내가 먼저 칼을 휘두른 것.
말 한 마디가 어리석게도 모든 추억을 더럽히는 얼룩이 되지 않기를 그저 기원합니다.
미안한 감정이 추악한 기억보다는 나을 테니, 내가 잘못한 것이고 내가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겠어요.
나 역시도 나의 관점만 고집하며 무수한 사람들에게 작든 크든 상처를 주면서 자라났겠죠.
이번주는 <자기동정>과 이별하면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해요.
가려진 시간 속 단편적인 기억에 진정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감정에만 휩싸여 타인에게 상처주는 안타까운 영혼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그래도 한 번은 손을 내밀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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