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규제와 인허가 이야기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생태계는 다른 산업분야와 달리 수 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합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규제 이슈를 떼놓을 수가 없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분야 자체가 근본적으로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제품이나 서비스의 효과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안정성까지 담보되어야 함은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혁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혁신 의료 기술이나 서비스를 어떻게 심사하고 규제할 것인지는 참으로 어렵고도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규제기관도 혁신을 어떻게 균형 있게 규제할 것인지의 딜레마에 직면하곤 하죠. 특히 코로나 19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기술의 발전이 너무나도 빠른 탓에 이것들이 기존의 의료기기 범주에 속하지 않거나, 분류가 어려운 서비스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SaMD Software as a Medical Device이고요.
혁신은 근본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고요. 혁신을 합리적으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프레임 워크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이 것이 최근 FDA 등 선진국의 규제기관이 규제를 혁신하고 있는 이유죠.
그러면 원격의료가 비교적 보편화된 다른 나라들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먼저, 앞서 언급한 '의료기기'를 새롭게 규정하고, 이에 맞는 규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호주, 중국, 일본 등의 규제기관 국제 협의체인 IMDRF International Medical Device Regulators Forum에서는 2016년 SaMD의 가이드라인을 확정 지은 사례들만 봐도 이와 관련된 글로벌한 움직임은 꾸준히, 또 빠르게 나타나고 있어요. 특히, 최근 FDA는 실로 파격적인 규제 혁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1) 디지털 헬스케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파격적인 조직 구성
FDA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잘 이해하고, 이에 맞는 규제를 혁신하기 위한 인력 구성으로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전담 부서인 Digital Health Unit을 따로 만들었었는데, 이 유닛을 작년(2020년 9월)에는 Digital Health Center of Excellence라는 부서로 아예 '격상'시키기도 했고요. 이를 중심으로 전문 인력 및 예산을 빠르게 확충해 나가고 있습니다.
2) Pre-Certification 제도
Pre-Certification(이하 Pre-Cert) 제도는 SaMD에 맞는 규제 프레임워크의 근본적인 변화의 아주 좋은 예시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제품은 주로 SaMD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기존의 하드웨어 의료기기와는 다르게 업데이트가 잦거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기존의 규제 방식대로라면, 의료기기는 변경될 때마다 새롭게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DA는 제품이 아닌 회사를 먼저 심사하고, 그 회사가 SaMD를 책임지고 제조하고, 이후 관리를 할 역량이 있는지를 미리-평가(말 그대로 pre-certification)하겠다는 것이죠. 이렇게 사전 승인을 받은 회사에 대해서는 훨씬 간소한 인허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런 규제 방식대로라면 제조사는 보다 큰 자율권으로 시장에 제품을 더욱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출시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진행형으로 개발 중인 프레임워크이고, 아직 완성 안은 아니지만, 그 개념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FDA의 규제 방식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규제기관은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규제를 실제로 바꾸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한국에서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종류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인공지능(AI) 의료기기·디지털치료제(DTx)의 허가 및 심사와 규제 지원을 총괄하는 전담 조직,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를 신설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며 발전하고 있는 의료기기 산업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식약처는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의료기기심사부에 전담 부서를 정식 직제화하기로 한 것인데요. 지난해 4월 평가원 첨단의료기기과 내에 출범한 '디지털 헬스기기 태스크포스(TF)'가 정식 과로 신설되는 것입니다.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는 소프트웨어(SW) 의료기기 허가심사와 규제 지원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AI 의료기기, 의료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의료기기, 디지털 치료기기, u헬스케어 기기 등을 포괄합니다.
식약처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전담하는 부서를 정식으로 신설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동안 첨단의료기기과를 비롯한 여러 부서에 산재되어 진행되던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의료기기의 인허가 담당 부서가 명확해졌으며, 관련 전문 인력의 확충을 통해서 심사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모두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약처에서 정식으로 전담 부서를 만들었다는 것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의료 산업에 그만큼 큰 위상과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