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길 위에서(On the Path of Pove)

아씨씨

by 마르치아


페루지아 Hotel Sacro Cuore(성심의 호텔), 성모님의 심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저 아래로 아시시가 펼쳐졌고, 더 멀리 바라보면 산타 키아라 성당의 종탑과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둥근 지붕이 햇살에 닿아 빛나고 있었다. 나는 여명이 트기 전 일찍 일어나 가방을 메고, 가난의 길을 따라 걸어 나섰다. 오늘은 산타 키아라 성당을 지나 산 다미아노 경당까지 걸어갈 참이었다. 프란치스코가 처음으로 십자가 위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그곳, 그리고 성녀 클라라가 생의 마지막까지 머물던 그 경당은 오래전부터 나의 마음을 부르는 곳이었다.


길은 조용했고, 햇살은 아직 낮았다. 아시시의 새벽은 기도하는 사람의 숨결처럼 고요하고 맑았다. 그날 나는 특별히 로카 마조레(Rocca Maggiore)에 오르지 않기로 했다. 높이 오르는 대신 나는 더 낮은 자리, 클라라가 선택했던 그 겸손의 공간을 향해 걷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산 다미아노 경당에 도착했을 때, 나무문을 밀고 들어선 나는 아무 말 없이 긴 숨을 내쉬었다. 정면에 걸린 그 십자가, 프란치스코를 부르던 그 음성. “프란치스코야, 가서 내 집을 고쳐라.”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앞에 앉아 오랫동안 머물렀다. 내 안에 울리던 그 음성도 조용히 들려왔다.


“마르치아야, 너는 이제 어디로 가려느냐.”


내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이 길을 선택한 이유, 그 무수한 질문들, 그리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벗겨지는 듯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성녀 클라라의 숨결이 남아 있는 돌벽을 바라보며 묵상에 잠겼다. 머릿속이 조용해지자 오히려 마음속은 웅성였다. 지나온 길, 만났던 사람들, 아직 끝나지 않은 인연들, 그리고… 그 사람. 함께 걷지 못한 길, 닿지 못한 마음, 끝내 말하지 못했던 고백.


하지만 이곳은 그런 후회를 붙잡고 있기에 너무 따뜻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를 위한 기도인지, 나를 위한 기도인지 모를 그 기도는 어쩌면 모든 상처를 놓아주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경당을 나와 다시 걸었다. 언덕을 내려오며 한 흑인 순례자를 만났다. 그는 로카 마조레를 향해 걷고 있었고, 나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Peace and good.” 나는 그 말에 미소로 답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었지만,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가난의 길 위에서는 누구나 순례자였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은 내게 한 편의 시였다.


그날 밤 호텔 방으로 돌아와 창을 열었다. 아시시는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고,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조용히 커튼을 걷고, 어둠 속에서 오늘 하루를 반추했다. 그리고 속삭이듯 마음을 정리했다.


다시 누군가와 이 길을 함께 걷게 된다면, 아시시처럼 여운을 품은 사람과 걷고 싶다. 말없이 함께 머물고, 고요히 서로를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사람과.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의 침묵까지도 함께 걸어줄 수 있는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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