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움베르티데 외곽의 작은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이름은 기억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La Tenuta dei Ricordi였고, 오래된 정원에는 장미가 피어 있었으며 나무 그늘 아래 라탄 의자들이 반쯤 눕혀져 있었다. 그날의 공기는 낮게 깔린 음악 같았고, 나는 말보다 숨이 많은 하루를 살아냈다. 말을 아끼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도 말을 덜 하게 된다. 대신 마음이 점점 또렷해진다. 그날, 우리가 마주 앉은 테이블엔 마른 빵과 신 복숭아 와인 한 병이 전부였다. 마른 빵을 보며 그가 머쓱해했다. “나가서 먹을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 오늘은 이걸로 정말 충분해.” 우리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그 소박하고 완벽하고 충만한 식사들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차려놓았다.
빵은 질겼고, 와인은 너무 셨지만, 우리는 마치 왕후가 질투할 걸인의 찬을 나누는 듯했다. “생각나?” 내가 빵을 조심히 뜯으며 그에게 물었다. “우리 국어 시간에 배운 건데,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란 말 말이야.” “들어본 것 같기도… 무슨 뜻이야?” “가진 게 많다고 행복한 식사는 아니고, 가진 게 없어도 마음이 있으면 그게 가장 귀한 식사라는 뜻이야. 지금 우리 이거—걸인의 찬이잖아.”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너… 그때 부자였잖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으면 이런 말 안 나왔을 수도 있어.” “맞아. 그땐 나 부자였지.” 나는 웃었다. “근데 그게 신기했어. 가진 게 많을수록 허전할 때가 있거든. 근데 이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꽉 차 있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더 오래 기억나는 것 같아.” 그가 피식 웃었다.
“근데 왕후가 질투할 것 같아. 우린 지금… 꽤 좋아 보이잖아.” 나는 잔을 들며 말했다. “진짜 그래. 우린 아무것도 없는데도 다 가진 것 같아. 이상하지? 빵 한 조각에 와인 한 모금인데, 내가 언젠가 먹었던 그 어떤 코스 요리보다 더 풍성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꼭 기억할 거야. 이건... 마음이 배부른 식사잖아.” “그래. 마음이 배부른 식사. 그런 거 진짜 있더라. 꼭 필요한 말은 없는데, 배가 부르고 마음이 편안해.” 그는 한숨처럼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랑 밥을 먹는 건, 참 드문 일이야. 나는 그게 되게 귀하다는 걸… 오늘 처음 깨달은 것 같아.”
그는 잠시 잔을 돌리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기억력이 너무 좋아. 가끔 놀랄 때가 많아. 나는 어릴 적 기억이 거의 없어. 여덟 살까지 엄마 젖 빨았던 기억밖에 나지 않아.” 나는 천천히 정원 너머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를 향해 물었다. “언제쩍 이야기 들려줄까?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고… 그런 무소유에 대해 처음 접한 날, 알려줄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말보다 더 깊은 동의가 그 침묵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음… 나도 매우 애착이 심한 아기였는지 세 살까지 엄마 젖을 떼지 못했었어. 하루는 엄마가 젖을 떼야겠다고 마음먹고, 연고를 바르고 나에게 젖을 물렸거든. 그 맛을 지금도 기억해. 기분 나쁜 쓴맛. 그리고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단호한 슬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품을 구하지 않았고, 그냥 스스로를 품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게 무소유를 처음 배운 날이었어. 아무것도 완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유년의 첫 배신이었고, 나는 그걸 기억해. 엄마의 흐릿한 미소와 당황한 얼굴. 복부부터 올라온 짜증.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심한 불안.” 그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와인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어쩌면 사랑도 이같지 않을까?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완전히 가진 건 아니잖아. 사랑하는 순간에도 우린 서로에게 머물 뿐, 소유할 순 없으니까.”
그 말은 마치 내 어린 날의 그 씁쓸했던 입 안에 처음으로 다정한 의미를 흘려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훗날 나는 이 문장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그저 아름다운 고백처럼 들렸던 이 말 한 줄이 사실은 우리 이별의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조용히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늘 나는 당신을 보면서, 늘 넓은 품과 다정하고 세심한 사랑을 기대하게 돼.” 나는 그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렇게 그가 경쟁적으로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구나. 훗날 나는 그걸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백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결심했다. 이 사람을 품어야 하는 내 품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조용히 고백했다. “나는 여섯 남매 중 막내였어. 엄마 젖이 부족했대. 형들, 누나들 지나고 나니까 내 차례엔 거의 없었다고 하더라. 늘 몸이 약했고, 엄마는 내 걱정만 하며 살았어. 나도 어릴 때부터 엄마 걱정을 달고 살았고.” 그날 우리는 인생에서의 첫 결핍에 대한 고백을 했다. 한 입 베어문 복숭아는 유난히 시었고, 마른 빵을 뗀 손은 부드러웠다. 빵을 떼고 있던 내 손을 그가 덥석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기억을 나눠주는 당신이 있어서… 난 너무 고마워.” 나는 와인잔을 들며 싱긋 미소지었다.
그날 밤, 우리는 함께 침대에 누웠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밖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낮게 울렸다. 우리는 등을 맞대지도, 껴안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고, 그 상태로 말없이 누워 창밖 별빛을 함께 바라보았다. 사랑은 말보다, 잠든 채로 맞닿은 체온에서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의 숨이 천천히 고르고 깊어지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날 하루의 모든 말과 침묵, 빵과 와인, 슬픔과 따뜻함이 서로의 품 안에서 조용히 숙성되고 있었다.
<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얇은 손을 내가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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