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efalco

그빛아래서다시묻다

by 마르치아


몬테팔코는 움브리아의 높은 언덕 위에 조용히 자리한 도시다. ‘움브리아의 발코니’라 불리는 이곳은 포도밭과 은은한 돌담 사이로 석양이 흘러내리는 풍경이 아름다워 시간은 느려지고 감정은 천천히 배어든다. 사람들의 말투도 낮고 눈빛도 오래 머문다. 나는 그곳을 걷는 내내 사랑이란 감정이 원래부터 이 도시처럼 조용히 물들어가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한때 사랑에 대한 서로의 정의가 달라 잠시 서로를 놓을 뻔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사랑이란 말이 없어도 감정이 흐르는 것이라 믿었고 그는 사랑이란 말로 설명되어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 시절 나는 그에게 자주 물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내가 그렇게 서 있었는데 왜.”


그와 다시 마주한 것은 몬테팔코의 어느 테라스 바 석양이 천천히 테이블 위에 앉는 시간이었다. 잔 속 와인은 따뜻하게 빛났고 우리는 그 빛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내가 조용히 물었다. “그땐 왜 그렇게 조용했어.” 그는 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말을 하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달라졌을 수도 있지.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우린 결국 다르게 기억하게 되잖아.”


그는 한참 창밖을 바라보다 말했다. “나는 그걸 몰랐어.” 나는 잔을 내려놓고 그의 눈을 바라봤다. “당신은 늘 조용했고 나는 그 침묵이 나에 대한 확신이라고 믿었어. 그런데 돌아보면 그건 확신이 아니라 회피였던 거 같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계속 말했다. “사랑이 조용할 수는 있어. 하지만 결국은 말해야 해. 당신이 그 말을 하지 않아서 나는 너무 많은 걸 혼자서 짐작해야 했어.” 그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고 잠시 후 낮게 말했다. “그래도… 넌 내 곁에 있었잖아.”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게 다였다고 생각했어? 곁에 있었다는 게 사랑의 증거야? 그건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끊어질까 봐 혼자 붙잡고 있었던 거였어.” 그의 표정이 조용히 흔들렸고 햇빛은 그의 옆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그 사랑이 고마웠어. 표현을 못 했던 거지 모른 건 아니었어.”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 속 와인은 이미 식어 있었고 빛은 우리 발끝에 닿아 조용히 눕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를 안았다. 그도 놀란 듯 멈칫하더니 잠시 후 천천히 나를 꼭 안았다. 그 품은 여전히 따뜻했고 나는 그의 어깨에 뺨을 기대며 생각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결심이라는 걸. 사랑은 누군가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결심이고 그의 침묵까지도 함께 품겠다는 나의 약속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가 나를 몰라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는 늘 사랑을 함께 있는 시간보다 함께하지 않아도 여전히 이어지는 마음으로 여겨왔다. 그리고 지금 그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 내 마음 한 자락이 아씨씨의 글라라 성녀를 떠올렸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르되 그를 소유하려 하지 않았던 사람. 멀리서 바라보며 자기 삶을 그 사랑 안에 봉헌했던 여인. 글라라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가장 강한 동행의 언어였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길을 걸었고 글라라는 자신의 자리에 남아 그를 믿었다. 그 믿음이 사랑이었음을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가 깨닫듯이. 나는 그 품 안에서 그녀가 이해됐고 어쩌면 나도 그녀처럼 살고 싶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리 있어도 함께 걷지 않아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너는 알 수 있도록. 나는 그렇게 내 사랑을 글라라처럼 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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