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초콜릿
페루지아의 거리는 마치 누군가의 목덜미처럼 따뜻했고 햇살은 느릿하게 돌바닥을 핥으며 흘렀다. 코코아 향은 공기 중에서 천천히 피어올라 목 안쪽으로 스며들었고 나는 군중 속을 미끄러지듯 걸었다. 신발 끝에 스치는 자갈의 감촉,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끝에 얹힌 초콜릿 조각들, 그리고 속삭임처럼 들려오던 낮은 웃음들—모든 것이 몸보다 먼저 감각을 깨웠다. 바람은 부드러운 속옷처럼 피부를 감싸며 스쳐갔고 나는 그 안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얼마나 육체적인 것인지 깨달았다. 입술 위에 놓인 단맛, 씹기 전부터 녹아드는 마음, 그날의 페루지아는 누군가의 눈빛보다 더 은밀하고 달콤한 도시였다.
거리에는 초콜릿을 파는 상인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웃으며 손짓했고 진열대 위엔 정성껏 정렬된 유혹들이 빛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매운맛 초콜릿을 하나 집어 들었다. 진한 갈색 겉면엔 고추씨처럼 붉은 점이 박혀 있었고 달콤한 기대와 함께 혀끝을 먼저 자극할 듯한 경고가 숨겨져 있었다. 그건 꼭 누군가의 마음 같았다. 겉은 부드럽고 달콤하지만 안쪽엔 조심하지 않으면 타버릴지도 모를 열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조각을 입에 넣었다. 처음엔 당연한 듯 부드러웠다. 설탕이 미끄러지듯 혀를 감쌌고 조금 늦게, 아주 천천히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사랑이란 것도 이렇겠지. 달콤함에 이끌려 입에 넣지만 진짜 맛은 그다음에야 찾아온다. 뜨겁고, 아릿하고, 때론 물 한 잔으론 사라지지 않는 잔향이 남는.
사랑도 초콜릿처럼—그 표어가 붙은 상점을 지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포장지 속엔 수백 가지 맛이 감춰져 있었고 어떤 건 단 한 입 만에 중독을 부르기도 했고 어떤 건 끝까지 씹어도 도무지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포장지만 보고 고른 마음은 종종 내 기대와 전혀 다른 맛으로 다가왔고 가장 평범하게 보였던 감정이 끝내 가장 오래 남았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바로 저 창 안 어딘가, 내가 건넨 적 있는 마음과 받지 못한 감정이 나란히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사랑도 초콜릿처럼—그 문장은 달콤한 듯 말하지만 결국, 깨물기 전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경고 같았다.
누군가 내게 준 첫 초콜릿은 부드러운 밀크였던 것 같다. 그 사람의 말투도, 웃음도 마치 혀끝에서 금방 녹아버리는 단맛처럼 순하고 따뜻했지만 그래서 더 쉽게 흘러가 버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누군가는 견과류가 든 초콜릿을 내게 건넸다. 겉은 반질반질 매끄러웠지만 안쪽엔 부서지는 감정들이 숨어 있었고 나는 그걸 씹으며 사랑은 다정한 척 하다가 결국엔 아프게 울리는 것이구나 하고 조용히 배워갔다. 그리고 오늘, 나는 매운맛 초콜릿을 고른다. 어쩌면 이제는 달콤함보다는 그 속에 감춰진 뜨거움과 끝에 남는 아릿한 여운이 더 진짜 같아서일까. 혹은,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으로 남고 싶었던 걸까.
축제는 끝나지 않았고 거리는 여전히 초콜릿의 향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작고 반짝이는 포장지 하나를 조심스레 집었다. 붉은 리본이 묶인 조그마한 상자,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누구에게도 아직 건네지 못한 마음 같았다. 그걸 들고 걷는 동안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걸 누구에게 주고 싶었을까. 지금은 떠나버린 사람일까,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이름일까, 아니면… 그저 잠시, 사랑이라는 말 앞에 나를 다시 꺼내보고 싶어진 나 자신일까. 그날 페루지아에서, 나는 초콜릿을 하나 집어 들었고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달콤하고, 뜨겁고, 끝내 혀끝에 남는 건 조용한 여운이었다. 마치 지금 이 기억처럼.
페루지아를 떠나는 길목에서, 나는 초콜릿이 아닌 마음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완전히 녹지도, 완전히 굳지도 않은 감정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아직 누구에게도 건넨 적 없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부드럽게 숨 쉬는 이 감정은,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나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나는 그에게 초콜릿을 건네듯 이 마음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꺼내어줄 것이다. 포장하지 않은 채, 단맛과 씁쓸함을 함께 담아. 사랑이란 결국, 그렇게 조금씩 용기를 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