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바라지"의 진실

by 마르치아


"나는 어느 날부터 바라지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등을 떠미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이름 없는 다정함으로 하루를 건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뒷바라지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누군가의 손등과 구부러진 등 그리고 말없이 밥상을 치우는 뒷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훈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저릿해지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은 아마도 그 말 속에 숨어 있는 다정한 무명의 시간이 나를 가만히 흔들기 때문일 것이다.


‘뒷바라지’라는 말은 처음부터 세속의 말이 아니었다. 그 어원이 되는 ‘바라지’는 본래 절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스님을 부르던 말이었다. 이들은 대중 앞에 나서거나 설법하지 않았고 그저 방을 쓸고 밥을 지으며 다른 스님들이 수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길을 닦는 역할을 했다. 바라지는 말 그대로 ‘보살핌’의 존재였다. 빛나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빛나게 하기 위한 존재 자기 이름은 사라진 채 누군가의 깨달음이 무사히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사는 길이었다. 그렇게 절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던 바라지의 마음이 세속으로 내려오며 ‘뒷바라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름을 바꾼 말은 모양도 달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은 여전히 다르지 않다. 말없이 무언가를 해주는 이의 등 뒤에는 단 한 번도 자기 중심이 된 적 없는 헌신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으니까.


불교에서 뒷바라지란 단순히 물리적인 도움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수행자의 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용히 그 곁을 지키는 일이다. 누군가가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도록 방을 치우고 물을 데우고 제때의 공양을 준비하면서도 그 모든 수고로움이 오직 상대의 평안과 성장을 위한 것임을 알고 기꺼이 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삶의 자세이자 정신이며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고요하고 깊은 방식이다.


어릴 적엔 몰랐다. 누군가의 손길이 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걸. 밥 냄새와 햇볕 냄새 마른 옷가지와 따뜻한 이불이 스스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걸 그 사랑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걸 나는 아주 오래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문득문득 생각한다. 나는 과연 누군가를 뒷바라지할 줄 아는 사람인가. 말없이 등을 떠밀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미리 그 길을 쓸고 가는 사람이 되었는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늘 앞에 서서 방향을 정하고자 했던 나의 사랑은 혹시 타인의 뒷모습조차 잊게 만드는 성급한 자기 중심이 아니었는가.


인간은 누구나 어떤 이의 바라지로 키워지고 완성되어 간다. 실로 인간 하나가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 쉰 명이 필요하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스친다. 우리는 이렇게 수없이 많은 뒷바라지로 성장하고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득문득 그 수고로움을 애석하게 잊고 산다. 누군가의 보살핌은 당연한 권리인 양 생각하고 보살핌을 받았다면 마땅히 다른 인연에게도 보살피는 바라지가 순환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손 대신 눈빛으로 말 대신 음식으로 선물 대신 기다림으로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단하지 않지만 오래 기억된다. 화려하진 않지만 깊이 남는다. 삶이란 그런 이들의 뒷바라지 덕분에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누군가의 뒷바라지를 받고 있다. 이름 없이 조용한 위로를 기대지 않아도 옆에 있다는 느낌을 말없이 있어주는 존재의 울림을 느낀다. 그 마음을 받을 때마다 나는 조금은 더 어른이 되는 것 같고 조금은 더 누군가의 뒤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누구에게 바라지를 하면서 나머지 삶을 살아가리라 마음먹은 지점이 있다. 암수술을 마치고 난 어느 날 나는 그 이후의 삶이 덤으로 주어진 것처럼 느껴졌고 그 덤 같은 생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희망을 잃은 사람에게는 용기를 배고픈 이에게는 따뜻한 밥을 사랑에 굶주린 이에게는 조용한 품을 내어주는 삶을 살겠노라 조용히 서원을 한 적이 있다. 그 서원이 내 삶의 뿌리가 되었고 내가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이유가 되었다.


뒷바라지는 누군가의 인생을 빛내주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 자신이 빛나도록 뒤에서 조용히 등을 지지해주는 일이다. 그 빛이 너무 강해서 쓰러질까봐 혹은 너무 약해서 꺼질까봐 그저 묵묵히 손을 뻗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손은 대부분 말이 없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사랑할 때 앞서서 끌어주기보다는 옆에서 걸어주고 싶다. 그 사람이 멈춰 설 때 함께 멈춰 서고 그 사람이 걸을 때 말없이 속도를 맞추며 꼭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대신 꼭 필요한 자리에 조용히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한다. 말은 없었지만 늘 곁에 있었던 사람으로.


삶의 의미는 언제나 빛나는 장면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조용히 기울어진 그릇 하나를 바로잡아주는 손길 속에 숨어 있다. 사랑이란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 서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눈부시게 드러내지 않아도 그저 한 사람의 무너짐을 가만히 막아내고 있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 끝까지 바라보며 손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손이 닿지 않아도 마음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일이 아닐까. 진짜 사랑은 그렇게 존재의 가장 조용한 경계에서 조용히 지켜주는 힘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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