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바라는 일을 염원이라 부른다. 나는 그 간절함으로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일을 기도라 알고 있다. 나의 첫 기도는 기다릴 틈도 없이 빠르게 응답되었다. 어릴 적 교회에 다녔던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땀을 흘리고 눈물을 삼키며 예수님께 애원하듯 매달렸던 그 순간.
내가 청한 건 단 하나였다. 중풍으로 고통받던 어머니의 아픔이 제발 멈추기를. 그 기도 이후 하느님은 어머니의 고통을 거두셨고 어머니를 데려가셨다. 나는 고아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셨기에 삶의 슬픔과 영혼의 평화가 교차하는 낯선 기쁨 앞에 나는 잠시 멈추어 섰다.
그때부터 나는 부활 신앙을 믿게 되었다. 죽음 너머의 부활은 육의 부활이 아니라 무지에서 깨어나는 빛의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간으로서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신께 돌아가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부활이었다.
그러므로 부활은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는 일이었고 하느님의 선하심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영혼의 빠스카였다. 나는 그 부활의 기쁨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그 이유 하나로 나는 또 한 해를 살아간다.
전례력 속에서 사순 시기는 그래서 나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부모님을 절에 모셨고 나는 하느님을 향한 타는 갈증 끝에 내 발로 성당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모의 반대와 친척들의 야유는 중학교 2학년 소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몰래 성당 교리반에 나가다가 들켜 수차례 종아리를 맞았지만 나는 다시 나갔고 다시 무릎 꿇었고 다시 기도했다. 6개월이면 받을 수 있던 세례는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해 자꾸 미뤄졌고 결국 3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영세를 받을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성당 2층으로 달려갔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제대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을 바라보던 그 시간은 내게 세상 어떤 위로보다 감미로웠다. 그 시간 내내 내가 드린 기도는 단 하나였다.
“주님, 주님께 떨어져 나가지 않게만 붙들어 주세요.”
그 문장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되뇌인다. 기도하는 동안 어딘가에서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드린 그 기도는 이름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성체조배였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1년 넘게 기도를 드리고 있다. 때로는 막막했고 때로는 처참했고 어떤 날엔 교만했으며 또 어떤 날엔 따지듯 하느님께 매달렸다. 그 모든 마음을 품고 나는 오늘도 다시 기도로 하루를 연다.
기도는 내 삶의 숨결이고 간절함은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나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