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시간

잃어버림의 미학

by 마르치아


햇살은 고요했고 바람은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그날도 나는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마음은 분명히 무언가를 향해 닿아 있었다. 커피 한 잔이 식어가는 속도마저 조심스러운 오후 나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다림은 언제나 시작은 명확하지만 끝은 흐릿하다. 올까 오지 않을까 닿을까 멀어질까. 아니 어쩌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움직였고 그 움직임이 이미 기다림이었고 그 기다림은 나를 조금씩 바꾸어 놓고 있었다. 시간은 찰나처럼 스치지만 그 찰나는 삶을 흔든다. 무언가 오기를 바라며 멈춰 있던 순간들이 언젠가 내 안에서 조용히 방향을 바꾸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오래전에 익숙했던 무엇인가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 전하지 못한 말 머뭇거리다 흘려보낸 눈빛들. 그 모든 것은 한때 나였고 지금은 나를 채우는 잔상이 되었다. 과거라는 이름의 시간들이 지금도 내 그림자 뒤에서 조용히 숨을 쉰다. 기다림은 언제나 목적지보다 나를 더 깊이 데려다 놓는다. 기다리던 그것이 도착하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달라져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큰 의미로 남는다. 나는 그날 성당의 종소리를 들었다. 멀리서 한 번 울렸고 나는 그 한 번의 울림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소리는 단지 한 순간이 아니었다. 불가에서는 그 순간을 찰나라 부른다. 찰나는 생각 하나가 피고 지는 지금 여기의 가장 작은 숨결이다. 나는 그 찰나 속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직 손을 잡지 않았던 계절 아직 말하지 못한 눈빛 아직 끝나지 않은 기다림. 시간은 줄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삼세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의 그림자를 겹쳐 안고 있는 하나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종소리는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약간 느릿했고 조금 더 낮고 깊은 울림이었다. 그 소리 사이의 정적은 무상의 숨결 같았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흔적 없이 스며드는 법이니까. 그러나 나는 안다. 찰나는 지나가지만 마음속엔 어떤 울림은 영겁처럼 남기도 한다는 걸. 기다림은 찰나에 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나를 다듬고 가라앉히고 결국 더 단정한 사람이 되게 했다.


돌아보면 잃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시간은 나를 가꾸고 있었고 나는 조금씩 투명해지고 다정해졌고 그 기다림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가장 단정하게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보다 내 안의 아직 도달하지 않은 나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 크다. 이제는 어떤 결과보다 그 기다림 속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숨 쉬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나는 여전히 기다린다. 아무도 모르게 말하지 않고 하지만 아주 온전히 깊이. 가끔은 기도처럼 가끔은 바람처럼 그리고 아주 자주 나답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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