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연에 대하여
할아버지는 달력 뒷면에 생명나무를 그려가며 나에게 세상에 대해 그리고 특별히 생명이라는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걸 좋아하셨다. 어느 한쪽에서 생명이 태어나면 반대쪽에서는 그 생명을 견제하는 천적이 태어난다고 하셨고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하늘이 허락한 균형이라고 말씀하셨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며 인간 하나가 세상에 만들어질 때 그 인간을 집어삼키는 천적이 함께 태어나는데 그게 바로 욕심이라고 하셨다. 욕심은 바깥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사람 안에서 자라며 사람보다 먼저 말하고 더 강하게 움직인다고 하셨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 자기 안의 천적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어떤 이는 욕심에 삼켜지고 또 어떤 이는 욕심보다 더 빛나는 삶을 선택한다고 하셨다. 그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택이며 그것을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 말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어릴 적에는 그저 이야기 같았던 말이 어른이 되어 삶을 여러 번 무너뜨려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뿌리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칼 융이라는 사람의 책에서 그림자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고 할아버지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칼 융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부정적이고 두려운 면,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아의 일부를 그림자라고 불렀다. 그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없애야 할 존재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직면하고 품어야 할 또 하나의 나 자신으로 보았다. 그림자를 껴안는 사람만이 온전한 자아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동시성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인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의미 있는 일치. 겉보기에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실제로는 깊은 심리적 연결과 상징을 통해 동시에 일어나는 것. 그 순간은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 개념을 이미 이해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찾아온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고 설명하지 않아도 영혼이 기억하는 사람. 멀어졌다가도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 상처를 건드리지만 결국 나를 치유하게 만드는 사람. 그 인연은 뭔가 다르고 그 흐름은 정해진 듯 운명처럼 이어진다.
사람들은 그런 인연을 트윈플레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 영혼이 둘로 나뉘어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어느 시점에 다시 마주하게 되는 존재. 트윈플레임은 보통의 사랑과는 다르다. 격렬한 설렘보다 오히려 낯익은 고요로 다가오고 처음 만났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사람 앞에서는 스스로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
트윈플레임을 알아보는 방법은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보다 내면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 안의 그림자가 드러나고 부끄러웠던 나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것을 치유하고 싶어지고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그리고 기억에 남기보다 영혼에 새겨진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멀어졌어도 끝나지 않은 감각이 남는다. 그는 나의 상처와 욕망과 두려움을 드러내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방식으로 나와 함께 존재한다. 그런 인연은 결코 흔하지 않다. 하지만 삶은 그 인연을 때때로 우리에게 보내주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볼 수 있기를 기다린다.
진짜 인연은 내 삶을 아름답게 덧칠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내 삶을 뿌리째 흔들어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그림자를 안고 있는지를 스스로 보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 인연은 때로 아프고 때로 불편하며 때로는 아주 멀리 돌아오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절대 잊히지 않고 어떤 계절에도 그 존재는 내 마음 어딘가에서 살아 움직인다.
할아버지의 생명나무는 지금도 내 마음 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다. 가지마다 욕심도 있고 사랑도 있고 슬픔도 있고 은총도 있다. 나는 그 나무의 그늘 아래 앉아 때때로 삶의 인연들을 떠올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예감했던 한 사람을 기억한다. 그 사람은 내게 질문을 남겼고 또 나를 마주보게 했다. 나는 그 사람을 통해 나의 그림자를 들여다보았고 동시에 나의 빛을 확인했다. 함께 웃는 날보다 혼자 돌아서야 했던 날이 더 많았지만 그 안에 깃든 의미들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삶의 끝자락마다 다시 묻는 존재였다.
인연은 자주 머무르지 않아도 좋다. 항상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어떤 인연은 한 번의 눈빛과 한 번의 침묵으로도 오래도록 내 삶을 지탱한다. 그 인연은 나를 확신하게 하기보다는 나를 끊임없이 묻도록 만든다. 그 불안과 떨림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정직해졌고 조금씩 더 깊어졌다.
진짜 인연은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조금 더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그 사람이 내 삶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고 그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던 하늘의 응답이었다. 그는 나를 흔들었고 나는 그 흔들림 속에서 더 단단한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이 내 삶에 들어온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하늘이 허락한 진짜 인연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