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만난 천사들

by 마르치아


살며 천사 몇 명이나 만나봤어. 나는 누구에게라도 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천사(天使)는 원래 기독교 용어가 아니다. 천사는 불가의 용어다. 하늘에서 보내진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처음 만나는 천사는 부모다. 어떤 날엔 정말 천사가 찾아와 삶의 이 모든 무거운 짐들을 들어줬으면 하고 바랐던 날이 있다. 어디선가 천사가 나타나 울고 있는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으면 했던 그런 때도 있었다. 그러나 뒤돌아보니 그때마다 어디선가 천사가 나타났었다. 말없이 눈을 맞춰준 사람.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넨 손. 마음보다 먼저 움직인 발걸음. 그들은 그렇게 천사인 줄도 모른 채 내 곁에 와 주었다.


암 수술을 위해 수술실에 호명되던 날 나는 수술 대기실에서 수술방으로 옮겨졌다. 그곳엔 수십 명의 환자들이 차가운 침대 위에 누운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리만치 나는 그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워 있는 이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내 침대가 밀려 들어갈 때 그들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아니 젊은 아가씨가 어디가 아프길래…”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에서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 눈빛은 염려였고 그 숨결은 사랑의 보살핌이었다. 그날 나는 보호자란에 내 이름을 쓰고 홀로 입원한 몇 안 되는 환자 중 하나였다. 차가운 철제 침대에 누워 이 수술방에서 내 삶이 끝날 수도 있다는 실낱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때 그 수많은 이들이 말없이 내 곁에 서 있었다. 그들은 손을 잡아준 것도 말을 건넨 것도 아니었지만 내 생각을 붙들어주었다. 내 생명을 무언의 연대로 끌어안아 주었다. 그들은 정말 내 삶을 축복해준 천사였다.


몇 년 전 겨울의 일이다. 서귀포 면형의 집에 방문했다가 밤에 갑자기 눈이 쏟아졌다. 서둘러 차를 몰고 돌아오던 길 거의 중간쯤에서 차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언덕길은 금세 눈으로 덮였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차를 천천히 몰던 중 갑자기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섯 바퀴나 회전했다. 몸이 두 바퀴쯤 돌아가던 순간 이상하게도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아주 작고 이상한 희망이 솟아올랐다. 그 짧은 순간 어째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까. 몸이 붕 뜨는 공포 속에서 나는 생명을 믿고 있었다. 여섯 바퀴를 돌고 난 뒤 마주 오던 네 대의 차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브레이크에 발이 천천히 눌러졌고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건 내가 누른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의 죽음을 제어하고 있었다.


그 손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날 내 곁에는 천사가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내 천사를 부른다. 마르치아 성녀님. 그건 남의 이름이 아니다. 바로 내 안에 숨어 있는 내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 나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부르는 기도다. 나는 내 안의 성녀를 부른다. 살아남기 위해 버티기 위해 또 다시 사랑하기 위해.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천사가 되어 살아간다.


삶의 위기에 처하거나 누군가의 비난과 조소 앞에 마주설 때 어디선가 우리의 곁으로 천사가 찾아온다. 그 천사는 특별한 날개를 달고 있지 않다. 그는 이웃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누군가일 수도 있다. 혹은 오늘 마주친 가장 초라한 이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눈빛 하나가 건네는 손 하나가 용기를 주는 말 한마디가 우리의 귓가에 닿아 넘어지지 않도록 등을 받쳐준다면 그가 바로 우리의 수호천사다. 하루에도 몇 번의 천사가 우리 곁에 다녀가는지. 하루에도 몇 번의 용기를 주는 문장과 삶을 일으키는 귀한 인연들이 우리의 삶을 보호하는지.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는지. 나는 이런 따뜻한 연대로 나머지의 삶을 채우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살며 만나는 천사들에 대한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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