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보건 기구 헌장에서는 건강을 단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라고 말한다. 거기에 1998년 이후로는 영성까지 건강의 요소로 포함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정의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곤 한다. 왜냐하면 그 넷 중 하나라도 건강하기가 사실은 참 어렵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을 가졌다고 해서 마음까지 건강하다는 보장이 없고 정신이 또렷하다고 해서 관계 안에서 안녕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삶이란 이 네 가지 중 적어도 하나쯤은 언제나 깨어 있는 구조 안에 우리를 둔다. 그렇게 보면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픈 사람이다. 나의 고통은 언제나 가장 크게 느껴지고 남의 고통은 종종 추상적으로만 다가온다. 그러나 그건 착시이고 환상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고통은 결코 비교할 수 없고 동시에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예전에 정신병원에서 봉사자로 지냈던 시절을 자주 떠올린다. 그 병동 안의 환우들은 늘 ‘아픈 사람들’로 불렸지만, 어느 날은 문득 그들보다 병동 밖의 사람들이 더 깊은 고통을 지닌 존재들처럼 보였다. 그 속엔 나도 있었다. 차분해 보이는 일상 안에 숨겨진 분노와 불안, 외로움과 절망이 나를 삼키던 시간. 그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고통은 가시처럼 찌르지만 동시에 인간을 맨몸으로 존재하게 하는 무게라는 것을. 내가 느끼는 고통이 유난스러워 보이는 것은 내 안에서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유일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심연이 있다. 내가 조용히 울던 날에도 누군가는 밤새 온몸으로 삶과 싸웠고 누군가는 또 말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존중할 수 있고 공감하려 노력할 수 있다. 고통의 깊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건강하게 살고 싶고 건강하게 죽고 싶다. 이 말은 어느 날엔 버거운 욕망처럼 느껴지지만 또 어떤 날엔 삶을 붙드는 가장 단순하고 순한 기도처럼 다가온다. 건강이란 온전함이 아니라 끊임없이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것을 나는 늦게야 배웠다. 지켜지지 않는 날이 더 많고 균형은 자주 무너지지만 그럼에도 다시 중심을 향해 나를 데려오는 마음. 그것이 건강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신비다. 봄날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건강은 완성이 아니라 태도라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