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삼짓날에 대하여

by 마르치아


내일은 내 생일이다. 음력 삼월 삼짇날. 해마다 이 날이 오면 사람들은 제비가 돌아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비를 본 적이 없다. 어릴 적엔 계단 끝에 턱을 괴고 앉아 하늘만 올려다보곤 했다. 혹시나 저 멀리 날아드는 작은 그림자 하나라도 보일까 싶어서. 누군가는 제비가 복을 가져온다고 했고, 누군가는 기쁜 소식을 안고 온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믿고 싶었다. 누군가 내게도 따뜻한 소식 하나쯤 가져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제비는 단 한 번도 나를 향해 날아온 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나는 지금도 제비를 기다린다. 기다린다는 건, 아직 마음 어딘가가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 세상에 나를 향해 열려 있는 창 하나쯤은 남아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삼월 삼짇날은 예로부터 길일이라 불린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나는 명리학을 배우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숫자 3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완성, 안정, 신성, 조화의 상징이다. 시간의 개념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로 나뉘고, 인간 존재 또한 조상, 나, 자손이라는 삼존으로 이어진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도 마찬가지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탄생을 알린 동방박사도 셋이었고, 그들이 바친 선물도 황금과 유향, 몰약이라는 세 가지였다.


불교에도 삼보가 있다. 불, 법, 승. 그리고 인간의 번뇌 또한 식욕, 수면욕, 음욕이라는 세 가지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배웠다. 불교대학에서 처음 들었던 그 말들이, 세월이 지나며 내 삶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하나 실감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에도 ‘3’은 늘 중요한 상징이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 천·지·인 삼재의 조화. 아이를 낳으면 삼신에게 기도했고, 태어난 아기는 삼줄을 끊고 나오며, 삼칠일 동안은 금기를 지켰다. 밥과 국과 물을 세 그릇 떠놓고,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길 기도하던 그 마음. 내 어머니도, 내가 태어난 날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셨을까.


숫자 3은 1과 2. 양과 음이 만나 만들어진 수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를 품고 있는 숫자. 그래서인지 나는 이 숫자가 좋다. 언제나 가운데를 지키며, 모든 것을 연결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3’이 두 번 겹치는 날. 삼월 삼짇날. 나는 이 날에 태어났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어딘가에 걸쳐 있었다. 혼자가 익숙했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했고. 말은 적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많이 움직였다. 어릴 적엔 내가 왜 삼월 삼짇날 태어났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내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인지. 왜 쉽게 미워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자주 눈물이 나는 사람인지.


삼월 삼짇날. 복이 찾아온다는 날. 기쁨이 날아든다는 날. 그런데 매년 제비는 오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제비를 기다린다. 혹시라도 올해엔, 정말이지 단 한 번이라도. 제비가 내게로 날아들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기다려왔던 그 제비가, 어쩌면 사랑일 수도 있고. 어쩌면 위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늦은 안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 나는 아직도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 삼월 삼짇날. 나는 다시 태어나고. 다시 기다리며. 다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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