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그리움
할아버지는 어릴 때 나를 무릎에 앉히고 밥을 드셨다. 내가 조금 더 자라자 작은 호족반을 내 앞에 놓아주시고 늘 마주 보며 밥을 먹었다. 밥을 뜨면 생선을 발라 얹어 주시고 김치국물을 떠먹여 주시던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의 식성을 닮아도 너무 닮았다. 항상 수저를 국물에 먼저 적시고 밥을 떴다. 그 습관이 왜 생겼는지 몰랐는데 오래전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수저를 국물에 적시면 밥풀이 덜 붙는다.” “왜.” “깨끗하게 먹어야지.”
할아버지는 항상 반찬을 가만히 바라보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따라 하면서도 왜 그러시는지 몰랐다.
"할아버지 왜 안 먹어." "뭘 먼저 먹을지 생각하는 거야." "그냥 먹으면 안 돼." "안 되지. 음식도 어울리는 게 있단다."
할아버지의 밥상에는 계절이 담겨 있었다. 색이 조화롭고 맛이 균형을 이루었다. 쓴맛이 있으면 신맛이 따라왔고 생나물이 있으면 숙채가 곁들여졌다.
“이 나물은 왜 먹어.” “이건 간에 좋고 이건 위에 좋고….” “이건.” “그건 맛있어서 먹는 거지.”
나는 할아버지 곁에서 다섯 해 동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음식의 궁합 계절의 흐름 사람의 몸과 입맛. 그때는 그저 할아버지의 말을 따라 했을 뿐인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밥상을 차리면서 그 말을 떠올린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나는 상 밑으로 발을 쭉 뻗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슬쩍 내 발을 건드리셨다.
"앗. 할아버지." "우리 강아지. 밥 다 먹고 장난칠 힘은 남았나."
나는 깔깔 웃으며 발을 뒤로 뺐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해 보거라."
나는 조심조심 발을 움직였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먼저 내 발을 살짝 건드리셨다.
"앗. 또 졌어." "호호. 우리 강아지는 아직 멀었구나."
나는 두 팔을 내밀며 할아버지에게 안겼다. 따뜻한 할아버지 품에서 나는 졸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할아버지. 내일도 같이 밥 먹을 거지." "그럼. 우리 강아지랑 매일 먹지."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그때는 몰랐다. 할아버지와의 겸상이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맛있는 밥상이었다는 걸.
지금은 할아버지가 곁에 없지만 나는 여전히 그때처럼 밥을 짓고 반찬을 놓는다. 쓴맛이 있으면 신맛을 곁들이고 나물을 무칠 때는 색을 맞춘다.
오십여 년 전 다섯 해 동안 들었던 풍월로 나는 오늘도 밥상을 마주한다. 그때의 따뜻한 기억을 한 숟갈씩 떠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