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글라라수녀원
나는 수녀님들과 나누는 친교를 통해 많은 힘을 얻는다. 수녀원에 초대받은 날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던 자캐오가 나무 위로 올라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부엌에서 분주히 음식 준비를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이던 마르타의 마음과 닮아 있는 것일까?
수녀님들을 만날 때면, 길을 잃었던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만나자마자 뜨겁고 충만한 포옹으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그 인사가 오늘의 친교의 시작이자 끝이다. 우리는 그 순간 이미 하나가 되고, 그 따뜻한 포옹 속에서 모든 것이 전해진다.
수녀님들이 정성껏 마련한 식탁 앞에 앉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는 #더세인트에서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정갈하게 준비된 반찬 하나하나에는 시간이 담겨 있고, 손길이 담겨 있으며, 사랑이 담겨 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마련한 식사는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배려와 나눔의 결정체다.
가끔은 수녀님들이 아껴 두셨다가 내어주시는 반찬이 있다. 이 또한 나눔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누군가를 위해 남겨 두었다가 기꺼이 내어준다는 것, 이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더욱 감동스럽다.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자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식사를 마치고 나누는 대화는 더욱 깊어진다. 신앙, 환경, 인권, 제주의 현실, 앞으로 교회가 나아갈 방향 등 우리가 이야기하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나답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서로 점검하며 애정 어린 조언을 나눈다.
누군가는 기도를 요청하고, 누군가는 고민을 나누고, 또 누군가는 세상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 자리에서는 어느 하나 소홀히 여겨지는 것이 없다. 모든 이야기가 경청되고, 모든 마음이 존중된다. 여기서 나누는 말들은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삶을 위한 기도가 되고, 각자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나는 수녀원을 나설 때마다 마치 거룩한 파견을 받는 것처럼 느낀다. 미사 때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도 그렇게 세상으로 보내짐을 경험한다. 수녀원에서 받은 평온과 은총을 품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거룩한 보내심은 미사 안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세상에서 부딪히고, 지치고, 감사할 것을 안고 다시 미사에 참례한다. 성체를 모시며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고, 그 힘으로 또다시 세상으로 파견된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말이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계속되는 사명임을 깨닫는다. 세상 속으로 나아가 다시 빛을 비추고, 다시 나누며, 다시 살아내는 것. 그리고 다시 감사드릴 수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
수녀원에서 받은 사랑과 은총은 내 삶을 통해 흐르고, 또 누군가를 통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사랑을 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거룩한 초대이자, 거룩한 보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