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초록의 잎들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나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이 길을 따라 걷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멈췄다.
성모님이 계셨다.
숲 속 한편, 고요한 공간 한가운데에서 성모님은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니,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처음 온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성모님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을 알고 있었고, 성모님께로 향하는 길도 알고 있었지만, 그 길을 걸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건 아닐까.
나는 천천히 성모님께 다가갔다. 하얀 망토가 부드럽게 흐르고, 가지런히 모은 손끝에는 묵주의 구슬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 눈길은 하늘을 향하면서도, 동시에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어쩌면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무거운 것들까지도 성모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듯했다.
나는 성모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저 그렇게 서 있었다. 성모님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분명한 위로를 느꼈다.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성모님은 다 알고 계시다는 듯했다.
최근 나는 기도를 하면서도 내 목소리만 들었고, 성모님의 응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도를 하긴 했지만 내 안의 소란 속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은 달랐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속에서도, 햇살이 성모님의 손끝에 내려앉는 모습 속에서도, 나는 성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주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안도감 속에서 성모님께 내 마음을 맡겼다.
언젠가부터 나는 성모님을 찾지 않았다. 그분의 사랑을 잊었다기보다는, 내 삶이 너무 바쁘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멀어졌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오늘, 성모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도.
오늘, 나는 성모님을 만났다. 하지만 사실은 늘 만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바람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내 기도가 조금씩 달라질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