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지 못하는 것들
사람은 무엇 하나를 온전히 놓지 못할 때 가장 외롭다. 마음속에 오래 머문 사람. 한때의 풍경. 특정한 말. 혹은 이해받지 못한 어떤 감정이 반복해서 되살아날 때 우리는 그것이 지나간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잠식하는 현재형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감정은 감정 이상의 무게로 마음을 누르고 일상 속 어딘가에 조용히 틈입해 제 자리를 차지한다.
시간은 흐르는데 마음은 한 장면 위에 얼어붙는다. 움켜쥐는 손이 저릿해지도록 매달리고 떠날 수 없는 감정이 그 위에 겹겹이 들러붙어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리하여 붙잡은 대상은 사라져도 붙잡는 마음은 점점 더 단단해진다. 사람은 종종 그렇게 사라진 것들로 자신의 세계를 채운다.
불교에서는 이런 마음의 상태를 집착이라 부른다. 이 단어는 붙잡다의 뜻을 지닌 집과 달라붙다의 뜻을 지닌 착이라는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집은 어떤 생각 감정 대상에 의식을 고정시키는 것이고 착은 그 고정된 의미 위에 머물러 떨어지지 못하는 성질이다. 그러므로 집착이란 마음이 특정한 해석과 장면에 묶인 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을 들러붙게 만드는 구조다. 집은 판단이며 착은 머묾이고 그 둘은 함께 움직인다. 붙잡는 동시에 들러붙고 움켜쥐는 동시에 그 자리에 나를 녹여넣는 이 이중적 작용은 결국 내가 나를 가장 깊이 가두는 방식이 된다.
문제는 그것이 점차 나를 이루는 정체성처럼 작동한다는 데 있다. 나는 그 사람을 그 기억을 그 미련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에 매달린 나 자신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붙잡고 있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혀진 내 해석이고 들러붙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결말이다. 그 결말은 끝나지 않았기에 사람은 끝내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은 대상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쌓은 기대와 해석 그리고 실패한 의미를 붙잡는다. 그 의미는 외부의 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쌓여가는 내적 서사다. 그래서 집착은 본질적으로 타인을 향하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강력한 자기집중적 고통이다.
붙잡고 있는 것을 놓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상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올려진 나의 마음이 사라질까 두려운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고 아파하고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집과 착은 그대로 남아 여전히 동일한 질문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망각이 아니다. 진짜로 놓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내가 부여했던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그 위에 올렸던 말들 해석들 상처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위에 쌓아올린 나 자신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사람은 집착을 통해 상처를 유지하고 상처를 유지함으로써 존재의 무게를 지탱한다. 그러나 상처는 존재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더 나아가게 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상처 위에 오래 머물기보다 그 상처를 품고도 더 멀리 걸어갈 수 있는 존재다.
놓는다는 건 잊는 것이 아니다. 다시는 움켜쥐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그 위에 들러붙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내가 나로서 다시 서겠다는 결심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풀어주고 난 자리엔 조용한 여백 하나가 남는다. 더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아도 되는 마음. 그 자리에 바람처럼 스며드는 것이 있다. 그건 평화이기도 하고 때로는 가벼운 쓸쓸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분명한 것은 그제서야 삶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삶은 멈춘 손이 펴지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더 이상 그 사람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 그 길을 걷는 내 발끝에서 비로소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