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느 시점부터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저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무게를 재는 저울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균형의 장치 같은 것이었다. 말로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형의 저울은 서로의 성의와 애정과 시간을 고요히 가늠하고 있었고,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으며 관계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 저울 위에 우리는 저마다의 진심을 올리고 상대의 마음을 맞바꾸며 그렇게 관계라는 것은 조심스럽게 무게를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균형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감각과 깊은 존중에서 비롯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게를 정직하게 주고받지 않으면 결국 어느 한쪽은 기울게 된다는 것도.
하지만 때로 그 저울을 잊은 사람이 있다. 아니, 잊은 척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주어진 것만 취할 줄 알았고 내어주는 일에는 서툴렀으며 혹은 애써 외면했다. 나는 그러한 이에게 한동안 마음을 다해 나의 것을 건넸다. 내가 준비한 따뜻한 자리와 조심스레 건넨 위로, 무언의 배려와 말끝에 스민 온기, 함께 나눈 침묵 속의 기도까지도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곤 했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내가 건넨 모든 것이 흔하고 가벼운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매일같이 시간을 들여 공들여 다듬고 꺼내 놓은 것들이었고 내 마음에서 길어 올린 가장 맑고 진실한 물이었다.
그는 종종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마움은 말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진짜 고마움은 말 너머의 태도에서 비롯되며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진실한 온기를 가진다. 그의 말에는 응답이 없었고 반복되는 공허한 인사말처럼 들릴 뿐이었다. 무게 없는 말은 금세 떠오르고 무게 없는 사람은 마음을 누르지 못한다.
나는 오래도록 그의 접시가 비어 있는 것을 보며 나 스스로의 마음을 눌러가며 견뎠다. 그를 향한 애정이 이 불균형을 덮어줄 수 있으리라 믿었던 때도 있었다. 내가 더 많이 주면 언젠가는 그도 무엇인가를 내어놓을 것이라 믿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무게 없는 사람 곁에 머무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잃는 일이라는 것을. 내 마음의 중심이 점점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조용히 그 저울에서 물러서기로 결심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기울어지는 저울을 감당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포기나 냉정함에서 비롯된 결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조용한 선택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는 마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무게를 함께 들어주는 데 있다는 단순하고도 깊은 진리를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관계란 나 혼자 애써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마주보며 같은 무게를 감당하려 할 때 비로소 꽃피는 것임을.
그래서 나는 조용히 그 접시에서 손을 거두었다. 지금 내 마음엔 어떤 원망도 없다. 원망은 마음에 남을 만큼의 무게가 있는 감정이지만 그마저도 이젠 스르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다만 저울의 법칙은 정직하다는 사실뿐이다. 그 법칙은 말없이 그러나 분명히 말해준다. 기울어진 저울 위에서는 오래도록 머물 수 없다고. 나는 그 정직함을 닮아가고 싶다. 더는 누구도 탓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의 무게만은 끝까지 단단히 지키고 싶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나를 사랑한 마음을 끝까지 속이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