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 나비를 만나다

by 이 경화


산책길에서 멈춰 선 나비 한 마리. 흙먼지가 깔린 바닥 위에서 황금빛 무늬와 검은 테두리를 품은 그 작은 생명체는 마치 고요 속의 선언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단지 나비 한 마리가 아니었다. 애벌레였던 시간과 고통스러운 탈피와 숨죽인 기다림 끝에 마침내 날개를 펼친 하나의 인생이었다.


나비는 처음부터 날 수 없었다. 처음엔 바닥에 붙은 존재였다. 초록의 잎을 갉아먹고 살아가며 다른 생명에게는 해충으로 여겨질 뿐 세상의 눈에 아름다움은커녕 조금은 징그러울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 시절은 인간의 삶으로 치면 미성숙한 시기였다. 넘어지고 실수하고 상처받고 때론 어리석기까지 한 시간들. 나도 그런 시간을 통과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번데기 시절. 세상과 단절되고 스스로를 고치로 감싸 안고 움직이지 못한 채 내부의 모든 것을 녹이며 완전히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그 고통스럽고 고독한 시간. 인간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느껴지는 시간.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하고 나조차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어둠. 그 어둠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날개가 돋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고요한 기다림 끝에 단단한 껍질을 찢고 나와 처음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삶이 선물하는 변화의 완성이다. 너무 연약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강한 시간. 이제 더 이상 기어가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자신만의 색과 무늬를 품고 공중을 가르며 나아가는 시간.


나는 그 나비 앞에서 문득 내 인생의 몇몇 순간들을 떠올렸다. 애벌레 같았던 어린 시절. 벗어나고만 싶었던 번데기 같은 고독. 그리고 지금 조심스레 펴고 있는 나만의 날개. 어쩌면 나는 아직 완전히 날고 있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분명 날개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산책길에서 마주친 이 호랑나비는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네가 지나온 길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지 마. 기어다녔던 시간도 숨죽여 견뎠던 날들도 지금 너를 이곳까지 데려다 준 소중한 여정이야. 그러니 조심스럽게 날개를 펴. 그리고 네가 가야 할 하늘로 날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