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누구를 "안다" 는 말

by 마르치아


제주에서 “안다”는 말은 육지에서 쓰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처음엔 그 차이를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몇 번 마주치고, 이름을 알고, 어쩌다 식사도 함께하면 그쯤이면 "나, 그 사람 알아"라고 쉽게 말하곤 하니까. 하지만 제주에서는 그 말이 그렇게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안다고’ 말한 누군가를 두고 제주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말하곤 했다. “아니, 그건 잘 모르는 거여.” 낯설었다. 그리고 묘하게 서운했다. 분명 나는 그 사람과 밥도 먹었고, 선물도 나누었으며, 몇 번의 대화도 주고받았는데, 왜 그걸 몰랐다고 하는 걸까. 내가 한없이 가벼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삶을 꿰뚫고 지나온 시간의 결이 있었다. 제주에서 “안다”는 말은 그저 정보를 공유하는 행위가 아니다.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안다고 말하는 것을 제주에서는 ‘안다’고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살아온 결을 함께 겪고, 기쁨과 아픔의 얼룩까지 받아 안을 수 있을 때 그제야 "그 사람, 내가 알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안다는 것은 곧 신뢰를 드러내는 표현이며, 내가 그 사람을 보증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함께 겪어야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제주의 삼춘들은 쉽게 ‘안다’고 하지 않는다. 조금은 무심한 듯, 하지만 실은 섬세하게 관찰하고, 차분히 관계를 쌓아가며 천천히, 천천히 말한다. 그 ‘천천히’의 시간 속에서 사람을 알게 되고, 품게 되고, 비로소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 괜찮아. 내가 알아.”


서울에서는 ‘소개팅’이 일상이지만 제주에서는 ‘보증’이 먼저인 문화다. 누군가를 소개하기 전, 소개자 자신이 얼마나 그 사람을 아는가, 그리고 그 앎에 책임질 수 있는가를 먼저 따진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곧 '내가 그를 신뢰하고 있으니, 당신도 신뢰해도 좋다'는 말과 같다. 이 말은 참 무겁다.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평판이 오가는 도시의 인심과는 전혀 다른 무게감이다. 이곳에서는 소개받은 사람을 믿기 전에 소개한 사람을 먼저 본다.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가에 따라 그가 데려온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가 정해진다. 그리고 이런 구조 안에서 '안다'는 말은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책임을 동반한 연대의 고백이 된다.


이주 9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나는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직업상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짧은 시간 안에 호감과 비호감을 판단하고 필요하면 협업하고, 필요 없으면 멀어지는 속도의 관계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곳의 사람들은 너무 느렸고, 너무 신중했으며, 때로는 차갑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느림이 불편했던 이유는 내가 기다릴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그 속에는 얼마나 깊은 따뜻함과 책임감이 숨겨져 있었는지 나는 아마 일찍이 느꼈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쉽게 ‘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어 본 사람도, 차를 나누어 마신 사람도, 함께 일을 도모했던 사람도 아직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관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내가 이 섬으로부터 배운 가장 큰 교훈일지도 모른다.


제주에 살다 보면 ‘문화 충격’이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삶의 방식이 육지와 다르다. 서로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고 간섭하지 않지만, 필요할 땐 누구보다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 정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거리를 두는 것 같고, 말수가 적으면서도 한마디 한마디에 묵직한 책임을 담는 사람들. 그들은 말보다 삶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그 삶으로 누군가를 안다고 말한다.


나는 이제 안다. 그들의 ‘안다’는 말은 누군가의 삶에 담긴 결을 보고, 그 고비마다 함께 걸어보며 눈빛으로 그 사람을 이해했을 때에야 비로소 허락되는 말이라는 것을. 그 말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단절이 아니라 배려였다. 빠르게 속단하는 것이 얼마나 쉽게 실망을 가져오는지를 아는 이들이었기에 천천히, 기다려주는 방법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나는 지금도 삼춘들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카페나 맛집 투어보다 그들과 나누는 말 한 줄이 더 깊다. 땅의 흐름을 아는 사람들, 말보단 손끝으로 살아온 사람들, 정직하게 겨울을 나고, 봄을 맞는 법을 아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나는 배운다. 사람을 ‘안다’는 말은 그 사람의 사는 결을 안다는 뜻이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그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 나는 쉽게 안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안에 담긴 책임과 사랑을 본다.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신뢰와 기다림이 이미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그러나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다. “그 사람, 내가 알아.” 이 말이 내 삶에, 그리고 관계에 얼마나 깊은 울림을 주는지 이제는 정말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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