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검은 모래가 한순간에 쏟아지는 듯하다가 이내 가늘고 부드러운 흐름을 이루며 아래로 떨어졌다. 마치 무언가가 흩어지고 다시 쌓이는 과정 같았다.
“이거 보고 있으면 꼭 숨을 쉬는 것 같아.” 내가 중얼거리자 친구가 나를 힐끗 보았다. 찻잔을 손에 쥔 채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낮고 힘 있는 음성으로 물었다. “숨?” 목소리가 묵직하게 공간을 울렸다. 깊고 낮은 파동처럼 차분한 여운이 길게 남았다. 나는 모래시계를 손끝으로 굴려보았다. 둥근 유리 안에서 모래는 쉼 없이 흘렀다. “응. 마치 숨을 들이쉬면 사라지고 내쉬면 다시 채워지는 것처럼. 한쪽에서 빠져나가는 동시에 다른 쪽에서 형태를 만들잖아.” 친구는 찻잔을 기울였다. 차가 잔을 적시는 소리가 낮고 부드럽게 퍼졌다.
“그럼 우리가 마시는 차도 비슷한 거 아닐까? 입안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온기가 퍼지고, 몸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느낌.” 나는 찻잔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잔 안에서 붉은 찻잎들이 부드럽게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찻물이 우리 몸속으로 스며들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무언가가 변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맞아. 변하는 거지.” 나는 찻잔을 손끝으로 돌리며 말했다. 차의 온기가 천천히 손끝으로 번져들었다. “마시는 순간 몸 안에서 다른 형태가 되는 거야. 따뜻함이 되고, 향이 되고, 기억이 되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임이 군더더기 없이 단순했다. 불필요한 제스처 없이, 그저 존재 자체로 안정적인 사람.
“우리도 그래.”
나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친구는 모래시계를 가리켰다. 유리 안에서 모래가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서 흘러가고 있지만 동시에 쌓이고 있어. 너랑 나, 이 순간이. 사라지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 우리가 다시 다른 형태로 이어질 거야.” 나는 가만히 웃었다.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었다. 검은 모래가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친구가 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납치당한 기분이야?” 나는 찻잔을 들고 향을 깊이 들이마셨다. 차의 온기가 입 안에서 퍼지면서 어딘가 먼 곳까지 따뜻하게 적시는 듯했다. “어쩌면. 너무 좋고 편해서 도망치고 싶지 않은 납치.” 친구는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그러면 좀 더 오래 납치당해 있어야겠네.” 나는 피식 웃으며 친구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차를 따르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가로질렀다.
“좋아. 한 잔 더 마시자. 이 납치가 오래가도록.”
우리는 납치된 듯 이 자리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벗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이제 와서, 그때가 떠오른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