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不二)’는 말 그대로 ‘둘이 아님’을 뜻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타불이(自他不二)’는, 곧 ‘나와 너는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이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문장이, 살아가는 동안 점점 더 깊고 무겁게 마음에 스며든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마음이 통하는 인연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연도 있다. 때로는 말이 통하지 않거나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런 순간마다 필자는 종종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하였다.
“저 사람은 나와 너무 다르다.”
“저건 틀렸다.”
이러한 생각들은 판단이라는 이름 아래 습관처럼 굳어지고, 스스로의 내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게 하였다.
그 벽은 처음에는 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듯 보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침묵이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나의 말만이 옳다고 믿었던 시간, 나의 감정에만 충실했던 순간들, 타인의 다름을 ‘틀림’으로 치환하며 거리를 두었던 태도들은 결국 나를 점점 고립된 존재로 만들었다.
“나와 너는 둘이 아니다.”
이 짧은 한 문장을 머리로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현대는 각자의 목소리와 주장이 넘쳐나는 시대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각자의 논리를 세우며 살아간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편을 찾고,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상대의 말보다는 자신의 말에만 집중하게 되기 쉽다. 이로 인해 관계는 점점 삐걱거리게 되고, 우리는 또다시 마음의 문을 닫는 쪽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식일까?
어느 봄날, 제주도의 한 오름을 오른 적이 있다. 산길 옆 작은 나무 아래 누군가 정성스레 쌓아놓은 돌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탑의 맨 꼭대기에 올려진 작은 돌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으나, 그것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서로 다른 돌들이 균형을 이루며 함께 서 있는 그 모습은 어쩐지 불이의 정신을 상징하는 듯하였다. 완전히 같지 않더라도, 조금씩 기울고 어긋나 있더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상태. 내가 있고, 네가 있어,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자리.
삶은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진실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시선이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한가?”
이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분별심이 조금씩 옅어지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상대의 말 뒤에 숨겨진 사연과 감정을 상상하게 되며, 그제야 ‘이해’라는 일이 가능해진다. 결국, 그 이해는 ‘연결’이라는 작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불이의 삶은 이론이나 철학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삶의 태도다.
예컨대, 누군가 거친 말을 건넬 때 곧장 반응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는 일.
자신의 주장보다 먼저 타인의 말에 내재된 진심을 들여다보려는 자세.
잘못을 무조건 덮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경계를 설정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관점을 절대화하지 않는 겸손함.
이러한 실천이 조금씩 삶 속에 스며들면, 우리는 점차 부드럽고 유연한 존재가 되어 간다.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나’라는 이름 안에 갇혀 있던 자아가 ‘너’라는 거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진실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삶의 수수께끼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길을 찾고, 때로는 길을 잃고, 다시 묻고 되짚으며 살아가는 여정 속에서, 불이라는 가르침은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다리가 되어준다.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되, 그 다름을 넘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는 삶.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진정한 지혜일 것이다.
오늘도 내가 마주하는 모든 인연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길가에서 스쳐가는 낯선 이들, 계산대 너머 피곤한 눈빛을 가진 이들, 말없이 커피를 건네주는 이의 손길까지도.
그들이 곧 나의 또 다른 얼굴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곳 제주에서, 바람 부는 오름 아래 두 손을 모은다.
당신이 오늘 만나는 모든 인연의 자리가, ‘둘이 아님’을 느끼는 따뜻한 자리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