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기한 아이였다. 태어날 때는 울었지만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식구들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첫 예방주사를 맞는 날이었다. 병원 천장이 날아갈 듯 울음을 터뜨리자 모두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울음은 단지 고통의 반응이 아니라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분명히 있음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 같았다.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울음이라는 악보 위에 나만의 음을 얹었다. 득음했다.
백일 사진을 찍으러 간 날, 사진관 아저씨의 낡은 셔츠에 배어 있던 담배 쩐내가 코끝을 스치자 또 크게 울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담배 냄새를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혐오에 가까운 감정의 기억이었다.
여섯 달이 되었을 무렵, 나는 한참을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 삼십 분 이상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아 어른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바로 그때 아버지의 위독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 고요함은 공허가 아니라 일종의 예감이었고 나는 이미 그 시간에 아버지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들리는 모든 언어를 동시에 속으로 따라할 수 있었다. 그게 특별한 능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여전히 가능하다. 세 살 무렵 글자를 배우지 않았지만 책을 읽어주면 통째로 외웠고 외우다 보니 어느새 글자의 모양이 의미와 연결되었다. 나는 세 살부터 책을 읽었고 그것은 단순한 읽기 이상의 일이었다. 세계와 조용히 입맞춤을 나누는 일과였다.
서재에서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책을 읽었다. 책 속에 대화체가 나오면 나는 연극을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 모습을 기특하게 여기셨고 그래서 나는 자주, 아주 자주 무대에 올라갔다. 한 번 들은 노래는 곧 따라 불렀고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그때 나는 박수의 맛을 알았다. 박수는 나를 더 빛나게 만드는 마법 같았다.
나는 잠들기 전 낮에 읽었던 책 속 장소를 다시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눈을 감고 잠들었다. 그러면 나는 정말로 그 장소에 있었다. 책 속의 거리, 바다, 숲, 성당, 낡은 다락방과 비밀의 문,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 있을 수 있었고 매일 밤이 나만의 여행이 되었다. 그 시간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잠드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처음 보면 색이 보인다. 말보다 먼저 색과 온도가 온다. 그 사람을 감싸고 있는 어떤 빛의 기운 같은 것인데 나는 그것으로 사람을 느낀다. 지금도 그렇다. 특히 온도가 중요하다. 그 온도는 그 사람의 깊은 심지 같은 것이어서 나는 거기서 병의 징후나 슬픔의 무게를 읽는다. 그래서 아직 병이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얼굴에서 암의 기운을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지금까지 열 명쯤 된다.
나는 식물과 동물과도 공감이 잘 된다. 이모네 밭에서 가지가 너무 커서 옆에 있던 배추가 햇볕을 받지 못하고 슬퍼서 운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지를 잘랐다. 가시가 손을 찔렀지만 견딜 수 있었다. 이모는 나를 혼냈지만 그날 나는 식물의 마음과 연결되는 문을 하나 열었다. 그 후로 나는 나무에게, 들꽃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그들은 언제나 조용히 응답했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 마치 내 눈이 하늘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흐름이 보이고 빛과 그림자, 감정의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문득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마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밥부터 먹어야겠다. 이런 어지러운 생의 감각 속에서 밥 한 끼가 이렇게 단단하게 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