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우리에게 ‘이제는 새로운 너로 등장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십 년 넘게 살아보니 인생은 마치 거대한 두 덩어리의 챕터인 것을 깨달았다. 앞 단락이 내 성공과 부, 그리고 명예에 관한 챕터라면 그 다음 챕터는 좀 더 구체적이고 공동의 선에 맞는 챕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반대의 흐름으로 살아온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애초부터 남을 위해 사는 챕터를 살아오다 비로소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따라 사는 변화의 장면을 맞이한 사람들. 그러니 삶은 단 하나의 도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모두에게 정해진 순서란 없다.
책과 책 사이에는 분명 갈피가 존재한다. 삶도 이 챕터와 다음 챕터 사이에 분명 갈피와 조짐이 존재한다. 우리가 어떤 일의 정황과 방향을 알아차리는 자각을 갈피 잡는다고 말하듯, 그 갈피는 뿌연 가운데서도 흐름을 가리킨다. 우리의 내면은 미세하게 반응한다. 변화의 기운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삶의 공기는 어느 결에 바뀌어 있다. 이 장면과 저 장면 사이에 있는 인터미션처럼, 삶은 우리에게 말없이 신호를 보낸다. 다른 챕터로 넘어가라는 거대한 우주의 사인을 말이다.
그 사인은 대개 조용하고, 대부분은 손실의 얼굴을 하고 온다. 막이 내려졌고,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그 갈피라는 시간 말이다. 어떤 이는 병으로 그 신호를 받는다. 몸이 멈추지 않으면 마음도 멈추지 않기에, 삶이 아예 멈춤을 명령한 것이다. 어떤 이는 실패로 받는다. 더 이상 이 길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세상의 따끔한 언어. 어떤 이는 아는 인연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일로 받는다. 혼자 남은 자리에서야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다음 장면에는 전혀 다른 역할로, 전혀 다른 분장으로, 전혀 다른 조연들로 새롭게 써야 한다. 익숙했던 대사는 더 이상 맞지 않고, 어제의 감정은 무대 밖으로 나가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인물로 등장해야 한다. 그러니, 하던 일이 실패로 돌아오고, 내가 믿었던 인연이 떨어져 나가고, 병마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그건 무대가 바뀌고 있다는 징조이며, 이전 장이 정리되고 있다는 징표다. 삶은 우리에게 “이제는 새로운 너로 등장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는 때로 격렬하게, 때로 아주 느릿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은 우리를 멈추게 하지 않으려 사인들을 계속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음 챕터는 더 정직하고, 더 나다운 이야기가 되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삶의 갈피가 찾아올 때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무대 옆에 서서 내게 주어진 대본을 기다린다. 그리고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이 역할을 벗고, 새로운 장면으로 걸어가겠습니다.
병을 주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삶은 하던 일에 실패를 주어 조금 더 분명히 말한다. “이건 끝났다. 이제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외면한다면, 삶은 마지막 수단을 꺼낸다. 정말 믿었던 인연들이 등을 돌리고, 조용히 혹은 차갑게 떠나간다. 그제야 우리는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걸, 이제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
변화는 친절하지 않다. 대개는 상실이라는 얼굴로 온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다음 챕터를 열기 위한, 삶의 가장 분명한 신호였다. 그런 조짐을 무시하고, 삶이 몇 번이고 보내는 신호를 애써 외면한 채, 벌거벗은 자신의 몸과 영혼을 제대로 바라볼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삶은 언젠가 더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우주는 사인을 거두고, 무대는 더 이상 준비되지 않으며, 관객 없는 장면만 되풀이된다. 그 사람은 여전히 같은 분장을 하고, 끝난 역할을 붙들고 무대에 서 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다. 이미 다음 챕터는 시작됐지만, 그는 여전히 이전 장면에서 혼자 말하고, 혼자 울고, 혼자 남는다.
삶은 그렇게, 멈춰버린 사람을 조용히 지나간다. 더 이상 등장시킬 대사가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무대 밖으로 퇴장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삶이 우리에게 고요한 사인을 보낼 때,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다시 구성하라는 은밀한 요청이다. 삶이 우리를 부수는 방식은 때때로 지나치게 정직하고, 때때로 너무도 조용해서, 우리는 그것을 일상이라 착각한 채 지나친다. 하지만 그 신호를 감지하는 사람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살아내지 않는다. 그는 묻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의 대본을 살고 있는가. 이 감정은 내 것이 맞는가. 지금 내 안에 흐르고 있는 말들은, 과연 진실한가.
삶의 챕터가 바뀐다는 건, 단지 겉모습이나 상황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건 자기 서사의 주체를 되찾는 일이다. 과거의 내가 구축해온 캐릭터를 벗어 던지고, 우주가 건넨 실마리를 따라 새로운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스스로가 선택한 존재다. 우리는 날마다 어떤 내가 될지를 선택하며, 그 선택에 책임지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삶이 나를 무너뜨릴 때마다, 우리는 묻는다. 이제 나는 누구로 살아야 하는가.
그 물음 앞에서 비로소, 삶은 다시 쓰인다. 낡은 챕터는 닫히고, 다음 장의 페이지가 조용히 펼쳐진다. 다시 등장하는 나. 다시 호흡하는 문장. 다시 깨어나는 의식.
삶은 결국, 우리가 쓰는 이야기이자, 우리가 읽는 철학이며,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연극이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 끝까지 남아 있을 사람은, 갈피를 읽어낸 자. 변화를 직시한 자.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시 연기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