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眼目)에대하여

by 마르치아


"보는 눈은 마음의 깊이만큼 열리고, 오래 견딘 사랑만큼 멀리 닿는다."


세상을 보는 눈은 나이가 들면 자연히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더 잘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쉽게 속고 더 빠르게 단정짓고 더 서둘러 포기하게 되었다. 진짜 안목은 오래 보고 깊이 보고 느리게 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감춰진 것들 안에 깃든 진실을 발견하는 감각. 그것이 있다면 우리는 사람을 잃지 않는다.


나는 살아오며 종종 잘난 사람보다 숨은 사람을 조용한 사람을 어설픈 사람을 그의 결대로 알아보는 이들에게 감동받았다. 한 사람의 진가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보는 이들은 보통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시끄럽게 말하지 않았고 화려하게 옷을 입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눈으로 사람을 읽을 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알아본 가치를 곁에 두고 끝까지 지켜보며 언젠가 빛날 것을 기다릴 줄 알았다.


나도 그런 눈을 갖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을 너무 믿어버려 자주 실망했고 실망 속에서 다시금 눈을 닦아야 했다. 그 눈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수없이 의심했고 그 과정에서 진짜 안목은 결국 자기 자신을 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치를 알아본다는 것은 단지 타인을 향한 일이 아니다. 내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 그 신념을 지키는 일에도 필요한 눈이다. 한때는 스스로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 선택이 내 사랑이 내 용기가 다만 감정에 휘둘린 어리석음이었는지 돌아보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시간은 말해준다. 진심은 늦게 도착할 뿐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렇게 나는 내 안의 빛을 다시 보게 된다. 어디에도 팔지 못한 나만의 방식.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지켜온 윤리. 그리고 사람을 잃고 나서도 그를 원망하지 않겠다는 결심. 그 모든 것이 나의 눈을 만들어 주었다. 그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예전에는 남들의 인정을 받는 이가 대단해 보였고 칭찬받는 사람이 옳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가장 중요한 건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안목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화려함 너머의 불완전함을 알아보고 잠잠한 슬픔 속에서도 숨은 빛을 포착하는 사람. 그들은 세상의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런 사람 앞에선 나도 마음을 다해 보여주고 싶어진다.


예전에 한 번 그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해 내 손으로 보석을 놓쳐버린 적이 있다. 그가 내 곁에 있을 때는 그저 투박하고 무뚝뚝한 사람이라 여겼지만 돌아서고 나니 내 삶에 가장 단단한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 지나간 인연은 더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를 알아본 나 자신은 그제야 철이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 보는 눈이 없었다는 말을 뼈아프게 이해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때의 아픔 덕에 나는 더 이상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가치는 겉에 있지 않고 가치는 늘 기다림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돌아보면 안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경험을 흘려보내지 않고 고통을 통과하고 사람을 잊지 않는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안목은 사랑의 깊이와 닮아 있다. 누군가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이제 나는 더 이상 누구를 속단하지 않고 빛나는 말에만 귀 기울이지 않으며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가치를 알아보는 눈. 그것은 결국 나를 지켜내는 힘이 되고 지켜볼 만한 사람을 끝까지 놓지 않게 만드는 조용하고 위대한 능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의 입을 빌려 그렇게 말했다. 눈앞에 반짝이는 것들은 자주 우리를 속이지만 오래된 영혼은 본질의 빛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그 본질은 말이 없고 설명하지 않으며 다만 존재함으로 진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알아보는 이 역시 말이 없다. 가치 있는 것과 소음 사이에는 언제나 침묵이 놓여 있다. 그 침묵을 견디는 사람만이 진짜를 알아본다.


노자는 말했다. 지혜로운 이는 보아도 말하지 않고 말하더라도 다 말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직시하는 눈이란 애써 보려 하지 않아도 끝내 보게 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 눈은 속이지 않는다. 그 눈으로 사람을 보면 그의 말보다 그의 결이 보이고 그의 웃음보다 그의 외로움이 보이며 그의 성공보다 그의 떨리는 손이 보인다. 나는 그런 눈을 닦고 싶다. 겹겹이 쌓인 고독을 뚫고 나오는 진심을 말보다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안목은 기술이 아니라 고요한 신념이다. 나는 이제 본다는 행위가 곧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라는 걸 안다. 마치 미처 말하지 못한 기도처럼 그 사람의 빛나지 않는 순간을도 내 눈에 담아둘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로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결정짓는다. 그러니 안목이란 결국 존재의 선택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감춰진 것을 꺼내어 들고 한 사람의 가능성을 먼저 바라봐주는 사람. 그가 세상을 바꾸고 결국 자신을 구원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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