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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당신이라는 싯점

당신 없는 날이 이리 길줄은 몰랐다

by 마르치아
처음엔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루쯤은 지나가겠지, 바쁜 일상에 묻히고 나면 당신의 빈자리는 서서히 흐려지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첫날을 보냈고, 둘째 날에는 조금 더 단단해진 척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잊는 일은 흐려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속여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당신이 없는 날들이 이렇게 오래될 줄은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손에 쥐는 컵의 온도에서도 당신이 생각났고, 문득 돌아보는 창밖의 노을에서도, 나와 나란히 서 있던 그날의 당신이 떠올랐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 선명해졌다. 아마도 나는 당신을 한 번도 제대로 떠나보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밤은 유난히 길었다. 그 밤엔 당신이 했던 말들이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내 곁에 와 앉았다. '괜찮아.' 그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지금은 안다. 당신의 '괜찮아'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슬픈 포장지였을 뿐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그 포장을 풀 용기도 없이 그저 말끝을 삼켰다. 우리의 침묵은 다정하지 않았다. 그건 외면이었고, 동시에 애절한 손짓이었다.



사랑했으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그리웠으면서도, 연락 한 통 남기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너무 조심스럽게, 너무 애틋하게 서로를 닮은 슬픔이 되었다.

그대여,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여전히 당신이 좋아했던 음악을 듣고, 당신이 자주 가던 골목길을 지난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마음은 어김없이 당신에게 향한다. 시간이 이 마음을 이끌어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강물처럼 흐르게 만든다.



당신에게 닿지 못했던 수많은 말들, 지금도 내 안에서 고요히 울린다. 사랑했어. 아주 많이, 오래도록, 그리고 여전히. 당신이 떠난 후로 나의 시간은 어딘가 기울어져 있다. 계절이 몇 번 바뀌었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살아가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당신이 머무는 방 하나가 있다. 그 방엔 햇살이 잘 들지 않고, 창문도 잘 열리지 않지만 나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다.



이따금 그 방에 앉아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소리내지 않고도 들리는 그 이름, 가슴 속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다 눈가에 이슬처럼 맺히는 이름. 그 이름 하나로 나는 아직도 살아 있음을 느낀다. 당신이 그리운 날엔 그 이름을 베개 삼아 잠들고, 그 이름을 지붕 삼아 하루를 견딘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장면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었던 그 날의 공기와 눈빛이 내게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 기억들이 나를 울리지 않기를,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당신이 없는 날들에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향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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